겨울잠 자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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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1/21 엄마와 귤
- 2012/01/20 여러 지점들 (문화적 보이콧에 대한 얘기에 앞선 생각들) (11)
- 2012/01/17 귀엽고도 무섭고도
- 2012/01/15 나윤선씨가 이스라엘이 후원하는 Red Sea Jazz Festival에 참가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3)
- 2012/01/09 Gaetano Grifo의 그림들
- 2012/01/06 Arsen Ghazaryan의 그림들
- 2011/12/30 곰치국,이란 게 있다 (8)
- 2011/12/29 보일러 아저씨와 나의 계획 (2)
- 2011/12/28 이런 데가 있다던데
- 2011/12/28 프로작 (1)
- 2011/12/22 평화의 기도 (2)
- 2011/12/13 가족여행 - 카톨릭 성지 (갈매못, 공세리, 배론성지) (7)
- 2011/12/08 치료 (4)
- 2011/12/07 곰싸움 (3)
- 2011/11/30 색이 바뀐다 (Gabriel Boray의 들판) (4)
- 2011/11/23 아이들과의 대화2 (8)
- 2011/11/23 Hassan의 말씀 (수정중) (2)
- 2011/11/20 이름씨와 이름씨의 그림, 우리 엄마 (2)
- 2011/11/16 요즘 나의 마음은 (10)
1.
나는 <팔레스타인을잇는다리>라는 데서 일했었다
<팔다리>는 민주주의를 '지양'하는 단체였는데,
이끄는 역할을 하는 분 건강이 흐느적, 하면서 문을 닫게 되었다
팔레스타인 관련해서 일을 하는 단체 중 <팔레스타인 평화연대>라는 데도 있다
잘은 모르지만 내가 보기에 <팔연대>는 진짜 단체같다
그러니까 구성원이 바뀌어도 색은 달라질지언정 큰 맥락은 굴러갈 수 있는 그런 힘이 있는 것 같다
나는 어느 시기 팔연대의 특정 활동을 그닥 좋아하지 않았던 적도 있다
그리고 지금은 팔연대가 하는 일에 방긋 웃으며 응원을 하고, 참가하지 못하는 미안한 마음이 크고,
댓글이라도 하나 달려고 노력하고 있다
팔연대의 활동은 '나라면 그렇게 하지 않을' 일이거나(잘못됐다는 게 아니라 취향을 말하는 거임)
'내가 하지 못하는' 일이거나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다
그런 것들에서 나는 의미를 찾을 수 있게 되었다
팔연대에 한 사람을 알고 있는데, 그 사람이 만든 변화다
2.
팔레스타인을잇는다리, 는 문화교류 단체였다
사실 '문화'란 게 범위가 무지막지 하던데 우리가 주로 다뤘던 건,
잘 나가는 음악, 잘 나가는 글, 잘 나가는 그림, 등이었다
나는 때로 팔다리의 일들을 즐겼고, 어떤 일은 벌이기도 했고,
또 어떤 것들은 '권위적'이라며 투덜거렸다
팔다리를 이끌던 사람과 나는 기본적인 눈은 비슷했는데
취향, 특히 문화에 대한 취향은 달랐다
그는 컴퓨터에 손만 대도 망가뜨릴 수 있는 능력이 있었고
나는 웃는 표정으로도 분위기를 싸늘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었다
그는 작가였고, 난 음악을 좋아했다
그리고 우린 기본적으로 남을 위해 뭘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팔레스타인에 가서도 게스트하우스에 쳐박혀 술만 마셔대서 친구들을 걱정시켰고
('팔레스타인은 생각보다 위험하지 않아. 나와서 좀 돌아다녀' 라는 말을 들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나와서는 술집에 쳐박혀서 아락과 맥주를 마시며 꼬장을 부려댔다
나는 팔다리에서 문화에 대한 걸 많이 볼 수 있었다
특히 라말라에 넘쳐나는 문화적 활동들, 외국 NGO들, 그리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들.
한 발만 내디뎌도 우리 역시 그 반경에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때로는 뭐가 '옳고' '그른지' 헷갈리기도 했다
난 대부분 내 존재가 민폐라는 기분으로 돌아다녔다
팔레스타인이건 어디건, 서로 다른 문화가 만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낯선 것에 대해서는 우선 반발심이 들었다
우리가 다루었던 건 '질 좋은' '고급 문화'들이었는데,
좀 더 대중적인 것들, 특히 영화처럼 기술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분야에서는 그들의 노력이 '조잡해' 보일 때도 있었다
그 눈은 항상, 계속, 쭉, 나를 따라다녔다
3.
나는 '분노'를 가지고 이라크에 갔었다
이라크에 사람이 있건 없건 신경도 안썼다
그런데 거기서 만난 친구들은 나에게 뽀뽀를 해주고, 내 손을 잡아주고, 야단을 치고, 걱정을 해줬다
이라크에서 돌아온 후,
나는 그 쉽다는 스페인어와 남미에 가겠다는 막연한 인생계획과 전공이었던 불교를 갖다버리고
말도 안되게 어려운 아랍어와 종종 여행금지지역이 되는 분쟁지역들과
복잡한 역사를 무조건 같이 공부해야하는 이슬람으로 전향했다
전향해야했다
그렇게 되었다
사랑은 어쩌다가 싹텄다
이라크에서 만난 사람들은 여러가지 동기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실체가 뭐였든지간에 내 눈에 비친 것만 보자면
명예욕도 있었고, 관성도 있었고, 희생정신도 있었고, 모험심도 있었고, 아픔도 있었다
나의 경우에는 다시 말하지만 분노였다
대개 명예욕을 가진 인간들이 뻘짓을 해댔고
그래서 나는 그 인간들과 명예욕을 싸잡아서 욕했다
'도대체 내가 뭘 잘못한 거니' 라는 질문까지 들었지만 난 끄떡도 안했다
하찮고도 하찮아 보였고 손발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고
간혹 그런 그들을 위해 통역을 해야할 때면 토악질을 했다
성질이 나면 주변 물건을 집어던지면서 소리를 질러댔는데
그런 나를 참아준 사람들도 있다
그러니까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뭔가를 찾아갔던 거다
4.
나는 대학에서 동성애인권운동에 막연한 관심이 있었다
하지만 내 취향은 그때도 명확했고, 인권운동단체들의 방식과는 어울리지 못했다
대학에서 세미나를 구실로 몰려든 사람들과 술을 마시면서 친해지는 게 내 방식이었는데
때로 사람들 앞에서 무언가를 해야할 때면
'보여주기'가 가장 큰 목적이었다
전혀 이상하지도 다를 것도 특이할 것도 없는 우리들이, 게이고 레즈비언이고 트랜스젠더고 하여튼 그렇다는 걸
눈 앞에서 자꾸 얼쩡거려서 익숙해지게 만들고 싶었다
영화제를 열었고, 영화제에 참석했고, 영화를 만들었고... 사랑에 빠졌다
난 첫사랑을 8년째 짝사랑 중이었고, 새로운 인연을 만났고,
그 인연 중에 청년이 있었고, 그가 내게 특별한 존재라는 걸 인정하기 전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나는 스스로 헷갈리지 않는 걸로 고민하기 보다는
레즈비언-이성애자-바이섹슈얼-에라모르겠다, 로 전향해갔고
그 과정이 결코 편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마냥 어렵지만도 않았다
그냥 그게 내 삶이었다
내가 가장 싫어하던 부류 중 '정치적 레즈비언'이란 게 있다
간단히 말하면 이성애자인데 '정치적인' 이유로 여성과의 연대를 섹슈얼한 부분까지 확장한 셈이다
나는 그들이 역겨웠다
하지만 여전히 모호한 지점들은 남아있다
나는 애초에 경계에 대한 개념이 없는 인간이라, 그렇게 모호한 지점들이 눈에 밟히면 허공에 붕 뜬다
어떤 아가씨들은 성폭력의 경험을 안고 있다
그들은 남자와 사랑에 빠질지언정 섹슈얼한 관계를 가질 수는 없을 때도 있다
또는 애초에 남자를 멀리하게 되기도 한다
그들이 여성 게이, 즉 레즈비언 사회 안에서 관계를 찾고 안착해 가는 것을
나는 '당연하게' 바라보았다
그건 내가 인정하거나 판단하거나 용납할 문제가 아니었다
그냥 그들의 삶이었다
나 자신이 경계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특히 여성들에게서 많이 나타나는 바이섹슈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하지만 정치적 레즈비언들만은 싫었다
그들의 노력, 시도, 주장, 그게 뭐든 간에 거기에는 '가식'이 들어있었다
그건 실제로 그 삶을 '삶'으로 사는 사람들의 모든 고통과 사랑과 시간에 대한 모욕이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진 않다
5.
방법적인 타당성, 에 대해서도 오랫동안 생각했다
그렇다면 노동자의 주장은 노동자가, 페미니즘은 여성들이, 퀴어운동은 이반들이,
때로는 '그들만이' '제대로' 말할 '자격'이 있는 건지.
그런 부분이 있지만 그렇지 않기도 하다
그들 말을 듣고 함께 웃어줄 사람들이 많으면 좋은 거다
대안문화판에는 재수없는 인간들이 있었다
나는 부모가 의사고 교수지만 학교를 자퇴했고 지금은 영화를 찍고 있지요, 하고 비스듬히 앉아서 말하는 인간들.
나는 나 자신을 그들과 분리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다
나 역시 고위공무원인 아버지와, 수박이 차있는 냉장고가 있는 본가와, 그럴듯한 대학에 적이 있었다
때로 나에게 그런 것을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나는 실속없는 환호보다는 진국, 그러니까 평생 나를 사랑해주시고 내 곁에 있어주신 부모님이 훨씬 훨-씬 소중했기 때문이다
한번도 내가 받고 태어난 환경과 내게 주어진 것들을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그것에 감사하되, 좀 다른 길에 서 있는 나 자신이 좌표를 잘 찍을 수 있도록
편협하되 재수없는 인간이 되지 않도록 애를 쓸 수밖에 없었다
어느날 나는 순식간에 '강남좌파'가 되었는데
즐기기로 했다
덕분에 강남구는 선거장소가 크게 바뀌지 않아서
내가 원하는 사람들에게 따박따박 투표하는 데도 어려움이 없었다
6.
맥도날드와 스타벅스에는 발을 딛지 않는다
이스라엘에 대한 보이콧의 의미다
아무리 추워도 스타벅스에 가서 커피를 마실 수는 없다
난 팔레스타인에 사랑하는 친구들이 있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음악 중에 싸이트랜스, 라는 게 있다
그 중에서도 좀 강한 쪽에 이스라엘 DJ들이 많아서 이스라엘트랜스, 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실제로 그들의 공연에서는 이스라엘 국기가 나부끼기도 한다
나는 싸이트랜스 파티를 좋아한다
그리고 거기에서 이스라엘 국기를 보면 가슴이 조여든다
싸이트랜스에 대한 보이콧은 미뤄둔 상태다
어찌해야할 바를 모른다는 게 맞는 말이다
7.
가장 중요한 태도 중 하나,는
난 팔레스타인이, 이라크가 희생자라고 해서, 거기 내 친구들이 있다고 해서,
팔레스타인이나 이라크가 '선'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는 거다
이스라엘은 '악'이 맞다
그게 팔레스타인을 '선'으로 만들지는 않는다
이라크나 팔레스타인에도 개새끼들은 널렸다
허벅지를 슥 만지고 가는 개새끼들도 있고, 저질스러운 욕설을 뱉는 것들도 있고
더 어렵게는 어떤 상황에서도 희생자 자태가 몸에 배서 오히려 그걸로 상대를 공격하는 자들도 있었고
난처한 상황을 견디지 못해 인연을 끊으려드는 좋은 친구도 있었다
내가 Rim Banna를 알게 된 건, 팔레스타인 문제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이라고 해서 Rim Banna를 좋아하는 건 아니다
그런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Rim Banna는 진실로 좋다
그 자태는 사실 명확하면서도 모호하다
정의가, 분노가, 의무가 예술로 이끄는 가이드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그렇게 사람들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후에도 그 정의나 그 분노나 그 의무가 예술에 앞서있다면
그건 훈련소에 맡겨놓은 강아지와도 같다
때로 반려동물 방에서 일어나는 소란도 비슷한 맥락이다
- 푸들 꼬랑지를 꽃분홍으로 염색하다니 동물학대입니다! (개인적으로 염색은 좋아하지 않는 편)
- 개가 저렇게 살 찔 때까지 먹이다니 동물학대입니다! (개인적으론 별 생각 없는 편)
- 목줄이 너무 쪼여보여요, 동물학대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사진이 그렇게 나오는 것일 뿐 주인은 강아지를 사랑한다)
- 저럴 바엔 안락사시키는 게 낫지 않나요? (어려운 문제다)
- 저렇게 훈련을 잘 받은 강아지라니, 동물학대입니다! (개인적으로 훈련은 좋아하지 않지만 학대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때로 어떤 훈련은 학대가 될 수도 있고
어떤 강아지는 이상한 걸 안 먹여도 살이 쪄가기도 한다
어렵다
명확하지만 모호한 부분이 있다
어떤 동기로든 예술로 다가갈 수 있다
좀 더 조심히 다가가는 게 안전하긴 하다
하지만 시간이 없을 때도 있다
그 애정이 살아있는 거라면, 시간이 지나서 알게 될 거다
나는 <팔레스타인을잇는다리>라는 데서 일했었다
<팔다리>는 민주주의를 '지양'하는 단체였는데,
이끄는 역할을 하는 분 건강이 흐느적, 하면서 문을 닫게 되었다
팔레스타인 관련해서 일을 하는 단체 중 <팔레스타인 평화연대>라는 데도 있다
잘은 모르지만 내가 보기에 <팔연대>는 진짜 단체같다
그러니까 구성원이 바뀌어도 색은 달라질지언정 큰 맥락은 굴러갈 수 있는 그런 힘이 있는 것 같다
나는 어느 시기 팔연대의 특정 활동을 그닥 좋아하지 않았던 적도 있다
그리고 지금은 팔연대가 하는 일에 방긋 웃으며 응원을 하고, 참가하지 못하는 미안한 마음이 크고,
댓글이라도 하나 달려고 노력하고 있다
팔연대의 활동은 '나라면 그렇게 하지 않을' 일이거나(잘못됐다는 게 아니라 취향을 말하는 거임)
'내가 하지 못하는' 일이거나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다
그런 것들에서 나는 의미를 찾을 수 있게 되었다
팔연대에 한 사람을 알고 있는데, 그 사람이 만든 변화다
2.
팔레스타인을잇는다리, 는 문화교류 단체였다
사실 '문화'란 게 범위가 무지막지 하던데 우리가 주로 다뤘던 건,
잘 나가는 음악, 잘 나가는 글, 잘 나가는 그림, 등이었다
나는 때로 팔다리의 일들을 즐겼고, 어떤 일은 벌이기도 했고,
또 어떤 것들은 '권위적'이라며 투덜거렸다
팔다리를 이끌던 사람과 나는 기본적인 눈은 비슷했는데
취향, 특히 문화에 대한 취향은 달랐다
그는 컴퓨터에 손만 대도 망가뜨릴 수 있는 능력이 있었고
나는 웃는 표정으로도 분위기를 싸늘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었다
그는 작가였고, 난 음악을 좋아했다
그리고 우린 기본적으로 남을 위해 뭘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팔레스타인에 가서도 게스트하우스에 쳐박혀 술만 마셔대서 친구들을 걱정시켰고
('팔레스타인은 생각보다 위험하지 않아. 나와서 좀 돌아다녀' 라는 말을 들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나와서는 술집에 쳐박혀서 아락과 맥주를 마시며 꼬장을 부려댔다
나는 팔다리에서 문화에 대한 걸 많이 볼 수 있었다
특히 라말라에 넘쳐나는 문화적 활동들, 외국 NGO들, 그리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들.
한 발만 내디뎌도 우리 역시 그 반경에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때로는 뭐가 '옳고' '그른지' 헷갈리기도 했다
난 대부분 내 존재가 민폐라는 기분으로 돌아다녔다
팔레스타인이건 어디건, 서로 다른 문화가 만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낯선 것에 대해서는 우선 반발심이 들었다
우리가 다루었던 건 '질 좋은' '고급 문화'들이었는데,
좀 더 대중적인 것들, 특히 영화처럼 기술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분야에서는 그들의 노력이 '조잡해' 보일 때도 있었다
그 눈은 항상, 계속, 쭉, 나를 따라다녔다
3.
나는 '분노'를 가지고 이라크에 갔었다
이라크에 사람이 있건 없건 신경도 안썼다
그런데 거기서 만난 친구들은 나에게 뽀뽀를 해주고, 내 손을 잡아주고, 야단을 치고, 걱정을 해줬다
이라크에서 돌아온 후,
나는 그 쉽다는 스페인어와 남미에 가겠다는 막연한 인생계획과 전공이었던 불교를 갖다버리고
말도 안되게 어려운 아랍어와 종종 여행금지지역이 되는 분쟁지역들과
복잡한 역사를 무조건 같이 공부해야하는 이슬람으로 전향했다
전향해야했다
그렇게 되었다
사랑은 어쩌다가 싹텄다
이라크에서 만난 사람들은 여러가지 동기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실체가 뭐였든지간에 내 눈에 비친 것만 보자면
명예욕도 있었고, 관성도 있었고, 희생정신도 있었고, 모험심도 있었고, 아픔도 있었다
나의 경우에는 다시 말하지만 분노였다
대개 명예욕을 가진 인간들이 뻘짓을 해댔고
그래서 나는 그 인간들과 명예욕을 싸잡아서 욕했다
'도대체 내가 뭘 잘못한 거니' 라는 질문까지 들었지만 난 끄떡도 안했다
하찮고도 하찮아 보였고 손발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고
간혹 그런 그들을 위해 통역을 해야할 때면 토악질을 했다
성질이 나면 주변 물건을 집어던지면서 소리를 질러댔는데
그런 나를 참아준 사람들도 있다
그러니까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뭔가를 찾아갔던 거다
4.
나는 대학에서 동성애인권운동에 막연한 관심이 있었다
하지만 내 취향은 그때도 명확했고, 인권운동단체들의 방식과는 어울리지 못했다
대학에서 세미나를 구실로 몰려든 사람들과 술을 마시면서 친해지는 게 내 방식이었는데
때로 사람들 앞에서 무언가를 해야할 때면
'보여주기'가 가장 큰 목적이었다
전혀 이상하지도 다를 것도 특이할 것도 없는 우리들이, 게이고 레즈비언이고 트랜스젠더고 하여튼 그렇다는 걸
눈 앞에서 자꾸 얼쩡거려서 익숙해지게 만들고 싶었다
영화제를 열었고, 영화제에 참석했고, 영화를 만들었고... 사랑에 빠졌다
난 첫사랑을 8년째 짝사랑 중이었고, 새로운 인연을 만났고,
그 인연 중에 청년이 있었고, 그가 내게 특별한 존재라는 걸 인정하기 전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나는 스스로 헷갈리지 않는 걸로 고민하기 보다는
레즈비언-이성애자-바이섹슈얼-에라모르겠다, 로 전향해갔고
그 과정이 결코 편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마냥 어렵지만도 않았다
그냥 그게 내 삶이었다
내가 가장 싫어하던 부류 중 '정치적 레즈비언'이란 게 있다
간단히 말하면 이성애자인데 '정치적인' 이유로 여성과의 연대를 섹슈얼한 부분까지 확장한 셈이다
나는 그들이 역겨웠다
하지만 여전히 모호한 지점들은 남아있다
나는 애초에 경계에 대한 개념이 없는 인간이라, 그렇게 모호한 지점들이 눈에 밟히면 허공에 붕 뜬다
어떤 아가씨들은 성폭력의 경험을 안고 있다
그들은 남자와 사랑에 빠질지언정 섹슈얼한 관계를 가질 수는 없을 때도 있다
또는 애초에 남자를 멀리하게 되기도 한다
그들이 여성 게이, 즉 레즈비언 사회 안에서 관계를 찾고 안착해 가는 것을
나는 '당연하게' 바라보았다
그건 내가 인정하거나 판단하거나 용납할 문제가 아니었다
그냥 그들의 삶이었다
나 자신이 경계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특히 여성들에게서 많이 나타나는 바이섹슈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하지만 정치적 레즈비언들만은 싫었다
그들의 노력, 시도, 주장, 그게 뭐든 간에 거기에는 '가식'이 들어있었다
그건 실제로 그 삶을 '삶'으로 사는 사람들의 모든 고통과 사랑과 시간에 대한 모욕이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진 않다
5.
방법적인 타당성, 에 대해서도 오랫동안 생각했다
그렇다면 노동자의 주장은 노동자가, 페미니즘은 여성들이, 퀴어운동은 이반들이,
때로는 '그들만이' '제대로' 말할 '자격'이 있는 건지.
그런 부분이 있지만 그렇지 않기도 하다
그들 말을 듣고 함께 웃어줄 사람들이 많으면 좋은 거다
대안문화판에는 재수없는 인간들이 있었다
나는 부모가 의사고 교수지만 학교를 자퇴했고 지금은 영화를 찍고 있지요, 하고 비스듬히 앉아서 말하는 인간들.
나는 나 자신을 그들과 분리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다
나 역시 고위공무원인 아버지와, 수박이 차있는 냉장고가 있는 본가와, 그럴듯한 대학에 적이 있었다
때로 나에게 그런 것을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나는 실속없는 환호보다는 진국, 그러니까 평생 나를 사랑해주시고 내 곁에 있어주신 부모님이 훨씬 훨-씬 소중했기 때문이다
한번도 내가 받고 태어난 환경과 내게 주어진 것들을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그것에 감사하되, 좀 다른 길에 서 있는 나 자신이 좌표를 잘 찍을 수 있도록
편협하되 재수없는 인간이 되지 않도록 애를 쓸 수밖에 없었다
어느날 나는 순식간에 '강남좌파'가 되었는데
즐기기로 했다
덕분에 강남구는 선거장소가 크게 바뀌지 않아서
내가 원하는 사람들에게 따박따박 투표하는 데도 어려움이 없었다
6.
맥도날드와 스타벅스에는 발을 딛지 않는다
이스라엘에 대한 보이콧의 의미다
아무리 추워도 스타벅스에 가서 커피를 마실 수는 없다
난 팔레스타인에 사랑하는 친구들이 있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음악 중에 싸이트랜스, 라는 게 있다
그 중에서도 좀 강한 쪽에 이스라엘 DJ들이 많아서 이스라엘트랜스, 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실제로 그들의 공연에서는 이스라엘 국기가 나부끼기도 한다
나는 싸이트랜스 파티를 좋아한다
그리고 거기에서 이스라엘 국기를 보면 가슴이 조여든다
싸이트랜스에 대한 보이콧은 미뤄둔 상태다
어찌해야할 바를 모른다는 게 맞는 말이다
7.
가장 중요한 태도 중 하나,는
난 팔레스타인이, 이라크가 희생자라고 해서, 거기 내 친구들이 있다고 해서,
팔레스타인이나 이라크가 '선'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는 거다
이스라엘은 '악'이 맞다
그게 팔레스타인을 '선'으로 만들지는 않는다
이라크나 팔레스타인에도 개새끼들은 널렸다
허벅지를 슥 만지고 가는 개새끼들도 있고, 저질스러운 욕설을 뱉는 것들도 있고
더 어렵게는 어떤 상황에서도 희생자 자태가 몸에 배서 오히려 그걸로 상대를 공격하는 자들도 있었고
난처한 상황을 견디지 못해 인연을 끊으려드는 좋은 친구도 있었다
내가 Rim Banna를 알게 된 건, 팔레스타인 문제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이라고 해서 Rim Banna를 좋아하는 건 아니다
그런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Rim Banna는 진실로 좋다
그 자태는 사실 명확하면서도 모호하다
정의가, 분노가, 의무가 예술로 이끄는 가이드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그렇게 사람들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후에도 그 정의나 그 분노나 그 의무가 예술에 앞서있다면
그건 훈련소에 맡겨놓은 강아지와도 같다
때로 반려동물 방에서 일어나는 소란도 비슷한 맥락이다
- 푸들 꼬랑지를 꽃분홍으로 염색하다니 동물학대입니다! (개인적으로 염색은 좋아하지 않는 편)
- 개가 저렇게 살 찔 때까지 먹이다니 동물학대입니다! (개인적으론 별 생각 없는 편)
- 목줄이 너무 쪼여보여요, 동물학대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사진이 그렇게 나오는 것일 뿐 주인은 강아지를 사랑한다)
- 저럴 바엔 안락사시키는 게 낫지 않나요? (어려운 문제다)
- 저렇게 훈련을 잘 받은 강아지라니, 동물학대입니다! (개인적으로 훈련은 좋아하지 않지만 학대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때로 어떤 훈련은 학대가 될 수도 있고
어떤 강아지는 이상한 걸 안 먹여도 살이 쪄가기도 한다
어렵다
명확하지만 모호한 부분이 있다
어떤 동기로든 예술로 다가갈 수 있다
좀 더 조심히 다가가는 게 안전하긴 하다
하지만 시간이 없을 때도 있다
그 애정이 살아있는 거라면, 시간이 지나서 알게 될 거다
Arsen Ghazaryan
1959년생
아르메니아
ghazaryanarsen@rambl
곰치,하면 왠지
두더지가 떠올랐다
그러니까 두더지의 물고기 버전.
지인이 곰치국을 먹었다고 한다
난 요즘 부모님과 사이가 좋은데, 다 심리 상담과 약과 신앙과 나의 노력 덕분이다
아, 부모님이 항상 나를 기다려줬다는 게 먼저다
그래서 부모님과 놀러를 다니는데
어느 해안도로를 따라서 어느 해수욕장에 들어갔더니(고유명사 기억 잘 못함)
건물에 온통 곰치국, 곰치국, 곰치국, 곰치국, 곰치국, 곰치국, 곰치국, 곰치국,
하고 써 있었다
곰치국이 테레비에 나온 적이 있다고 하는데
테레비를 안봐서 잘 모르겠다
곰치국을 먹고 온 지인은
'조낸 맛있어요'
라고 했다
하긴,
그러니까 온 사방이 곰치국, 곰치국, 곰치국, 곰치국, 곰치국, 곰치국, 곰치국, 곰치국, 이었겠지
곰치국, 하면 나는 두더지국, 하고 어감이 같다
거부감이 드는 건 아니고, 오히려 먹어보고 싶기도 한데
그냥 이름에서 나는 느낌이 그렇다
두더지국을 먹어보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다
아마 오랫동안 페스코채식을 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페스코 채식을 하는 사람들은 육고기는 안먹지만 물고기는 먹는다
곰치 곰치 곰치 곰치 곰치
나는 채식을 안 한지 오래됐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홍초불닭을 먹기 시작했고
수년 동안 안먹은 걸 보충하려는 듯, 고기를 골라먹기 시작했고
안주도 막 고기를 시켜 먹다가
몸이 아파버려서, 실은 고기 때문에 아픈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었다
원래도 물고기는 좋아하는 편인데
아구찜도 잘 먹고 회도 잘 먹고 홍어도 엄청 잘 먹는다
그러니까 곰치국도 문제없다
하지만 굴이나 멍게는 싫다
굴 싫어
내가 보일러 아저씨한테 반하게 된 것은
표정 때문이었다
쫌 어디서 맞고 다닌 듯한 얼굴에 서늘하게 웃는 표정이 있는데
나는 세상에서 그거에 제일 약하다
처음 만나서 인연인 걸 알았던 사람들은 있었지만,
그냥 얼굴만 보고 반한 건 처음이다
처음이어서,
가슴께에 이름표가 달려있는지 확인도 못했고
왼손 약지에 반지가 있는지도 확인 못했고
그런 게 지금 중요한 게 아니란 걸 주위 사람들에게 인식시키는 데도 성공하지 못했다
아니지,
그 전에 할 일이 있는데
지금이 나한테는 일종의 차분한 기간, 이기 때문이다
1. 우선은 5월까지 기다려야 한다
5월은 되어야 새벽에도 날이 따뜻해지는데, 난 요새 추위를 많이 탄다
그리고 새벽에 밖에 앉아있고 싶다 졸린 건 싫은데 새벽냄새는 좋다
2. 일년동안 안만났던 가까운 지인들을 먼저 만나야 한다 순서란 게 있으니까
3. 한달 묵주기도 클리어... 그 정도 노력은 해줘야 손목에 십자가를 새길 수 있을 것 같다
4. 그리고서 손목에 십자가를 새긴다 빅문오빠가 있으면 좋겠지만 다른 타투이스트도 괜찮다고 한다
5. 줄어든 귀를 다시 늘린다 목표는 12mm, 좋아하는 것들을 다시 찾아서 하는 중이다
6. 약을 먹지 않아도 상태가 갑자기 나빠지지 않을거라는 확신이 있을 정도로
약을 오래 먹은 상태였으면 좋겠다
7. 주양쇼핑 지하에 있는 빵을 종류별로 다 먹어본다 싸고 크고 맛있고 나는 빵을 좋아하니까
8. 담배를 끊는다, 오늘부로 다시 끊었다
9. 돈을 모은다 모으는 게 아니라 아낀다
10. 메모를 한다
일부러 숫자를 맞춰서 10개다
보일러 아저씨, 기다려!
미국에서 돌아온 스펙타클 청년의 페북에서 퍼왔습니다
홍대에 있대요
닭발 좋아하는데.

+
이건 개새.
사진은 불펌.
홍대에 있대요
닭발 좋아하는데.
+
이건 개새.
사진은 불펌.
내가 먹는 약은 프로작이다
이름은 다른데 하여튼 같은 성분이다
프로작이 효과를 발휘하기까지 3주 동안
분홍색 작은 알약도 한알, 반알, 1/4알로 줄여가며 먹었는데
지금은 안먹는다
나는 오랫동안 마음이 안 좋았고
지난 일년 동안은 몸까지 안 좋았다
봄에는 직장을 그만두고 종합검진을 받았지만 큰 이상이 없었다
천성적인 게으름과 나태함을 이겨내기 위해서 의지를 불태워 봤다가
그만 그냥 활활 타올라 버렸다
기운 빠지는 짓이다
나는 병원을 두 군데 다니는데,
약을 지어주는 쪽은 상담에는 큰 관심이 없고
나는 그래서 여러모로 마음이 편하다
약을 먹으면서
주기적으로(그것도 점점 빨라지면서) 오던 무기력증과 폭식증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최소 6개월 동안은 약을 먹어야 된다는데
나는 벌써부터 약을 끊은 후가 걱정되고 있다
그런데 의사는 단 한마디,
"듣는 약이 있다는 것도 다행한 일이죠. 무슨 걱정이에요."
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아, 다행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프로작의 대표적인 부작용 중 하나가 불면증이라는데
나는 약을 먹으면서 잠이 더 늘었다
버스에서 내려야 하는 정류장 한두개 전에도 스스륵 잠이 들어서
어딘지 모르는 아파트단지에서 내린다
밤을 새지도 못하고, 아침에도 늦잠을 잔다
의사들이 둘 다 진단한 내 우울증의 시발점은
10살 때부터다
그때부터 주기가 크긴 했지만 같은 무기력증과 같은 폭식증을 겪고 있었다
<이런 세상에서 제정신인 게 이상하지. 나도 병원가면 우울증이라고 할걸>
이라거나
<다들 그 정도는 있는거지,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마>
라고 말한 사람들 중에서 내가 진지하게 들었던 건
우리 오빠랑 오수연이 말했을 때 뿐이다
나는 사람을 가린다
의사 말에 따르자면, 나는 오랫동안 아팠었기 때문에
이제와서 뭐가 내 성격이고 뭐가 증상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나는 기억나는 시점부터, 화를 낼 때 빼고는 감정을 거의 못느끼는데
그건 증상이라고 한다
사람이 거슬려서 끝내 술을 마시지 않게 된 것도, 증상이다
그럼 거꾸로,
요즘에 부모님과 가까워지면서 기분이 좋은데
그건 약의 효과일까
세례를 받게 된 여러 경로 중 하나가,
내가 입는 옷, 내 성격, 내 말투, 내 기타등등이 결코 내가 아니고
그것들이 다 사라졌을 때 나한테 뭐가 남아있나 살짝 살펴봤더니
슬프게도 가식과 나태와 자존심이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나, 라는 건
참 다양하다
남아있는 게 없다는 건 좀 슬프지만
개운하기도 하다
주님,
저를 당신의 도구로 써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신앙을,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두움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위로받기 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성 프란치스코, 평화의 기도
전날부터 엄마는 입을 거랑 먹을 거를 챙기고
아빠는 갈 곳을 꼼꼼하게 수첩에다 적었다
운전은 아빠가,
운전 못하는 나는 조수석에,
아픈 엄마는 뒷자석에 누워서
아침에 출발할 때부터 눈이 왔다
눈 비스무레한 싸레기가 전에 한번 오긴 했었지만
제대로 펄펄 내리는 눈은 처음이었다
고치같은 자태의 엄마 사진기를 피하시는 아빠
갈매못은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올라가보지 못했다.
삼차원입체십자가가 멋있다
가족여행에서 스타일따위는 중요하지 않은거다! 따뜻하면 제일 좋은거다!
이날 아침 엄마는 나를 위해 솜바지를 준비해놓으셨지
하지만 차마 그것만은 입을 수가 없었어
미적감각은 인간과 역사에 대한 예의라고 항상 말해왔기에
공세리는 영화촬영의 배경이 되기도 한다고 했다 엄마가 영화의 한 장면처럼 눈을 바라보고 계셨다
성당에 들어가서 거금 만원을 내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는데
나와보니 눈이 펄펄 내리고 있었다
깔맞춘 아빠 엄마
점심에는 간장게장을 먹고 저녁에는 매운낙지볶음을 먹고
차 안에서는 엄마가 개인별로 싼 과일과 떡과 달걀과 고구마를 먹었다
나는 병원을 두 군데 다니는데
하나는 한의원이고 다른 하나는 병원이다
양쪽 병원에서는 내가 다른 쪽을 다닌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제대로 다니고 있다는 건 모른다
한의원 쪽에서는 상담을 공들여해주고, 병원 쪽에서는 약을 공들여지어준다
문제라고 할 것도 없지만,
문제가 뭐냐면
나는 개인적인 얘기를 하는데 익숙하지가 않은데
이제는 일주일에 2번, 서로 다른 사람에게 반복해서 내 이야기를 해야한다는 사실이다
다행히 한의사는 인내심이 많고
양의사는 얘기보다는 약의 효과에 더 관심이 많다
주변 사람들 중에서 나더러
그냥 다들 가지고 있는 문제 같은데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는 거 아니냐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그러니까 '너무 심각해'지면 안된다는 투다
내가 심각한데 왜 심각해지면 안된다는 건지도 모르겠고
매번 설명하기도 귀찮지만,
다들 가지고 있는 문제여도 그냥저냥 살 수 있는 사람한테는 문제가 아니고
그 때문에 일을 그만둬야 했다거나, 일상에 변화가 뚜렷해졌다거나, 몸이 부정적인 영향을 받으면
문제라고 생각하는 게 정상이다
또 흥미로운 건
내가 가깝다고 생각했던 사람들보다는
오히려 한걸음 떨어져 있었던 주변의 지인들이 나의 변화를 더 눈치채고
위로를 해주고
손을 내밀어주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무엇보다 그 따뜻한 손들이 너무 필요해서 심지어 독일에까지 국제전화를 걸던 중이었다
성당에서 혼자 앉아있다가 나는 그동안 무엇을 보고 무엇을 잡고서 온 건가 하는 생각에
조금 흔들거렸다
그러고 보니
항상 그 자리에서 나를 꼭 보듬어주고 계시는 아빠엄마의
품은
왜 항상 미안하기만 하고 부담이고 귀찮았을까
왜 먼저 사랑하고 기쁘고 좋다는 게 앞서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병원(들)을 다니면서 좋은 점은
엄마아빠와 처음으로 나에 대한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는 거다
그런 게 처음이라 어색해하실 줄 알았는데
우리 아빠엄마는 웬만한 변화나 충격에는 끄떡도 하지 않으신다
나랑 오빠를 키우면서 뱃속에 부처가 들어앉으셨다
+
나는 상담을 할 때
'나에게 충격적이었던 일'을 중심으로 얘기했었다
예를 들면 10살 때 원인모를 열병으로 아팠던 거, 그리고 스테로이드를 치료약으로 복용했던 거, 그 부작용.
사실 그거 말고는 없었다
그런데 학창시절 얘기를 하다가 고3 때 대학을 안가고 동굴에서 도닦으려고 하다가 발각돼서
학교랑 집안을 뒤집어놨던 얘기가 나왔다
왜 그 이야기는 미리 안했냐며 의사가 물었다
다른 사람들은 놀랐겠지만, 그 일을 꾸민게 난데 내가 놀라고 충격받을 게 뭐람,
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나는 상당히 둔한 편이어서,
자신에게 뭐가 충격이었고 뭐가 일상이었는지 구분을 못하는 게 맞는 거 같다
그렇잖아도 상담중에는
평소라면 감정변화 없이 나열할 수 있는 10가지 이야기들 중에
유독 어떤 것들에는 격렬하게 반응을 하면서 울 때가 있다
지난주 상담 때 나는
예수님이 불쌍하다면서 숨을 못쉬게 울었고
정신이 들고 나서는 기분이 멍 했다
생뚱맞게 예수님이 그렇게까지 불쌍했었나
내 안에 누가 뭔 생각을 하면서 들어앉아있는 건지 모를지경이다
아마 그래서 내가 뜬금없이 크리스찬이 된 건지도 모른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경악을 했었는데.
그리고서 아빠가 말해서 문득 알게 됐는데,
나는 어렸을 때는 없던 고소공포증이 언젠가부터 생겼다
언젠가부터 커다란 가방에 '모든 것'을 다 넣고 다녔고
언젠가부터 얇고 뾰족한 게 무서웠다
- 다들 크고 나면 집을 떠나고 싶어해. 그래도 실제로 그러는 애들은 별로 없어.
그런데 너랑 오빠는 그러더라. 진짜로 가더라.
라고 엄마가 말했다
아, 나랑 오빠가 그랬었구나
하지만 엄마아빠를 떠나고 싶었던 건 아니었어요
우리 부모님은 많이 괴로웠을텐데도
항상 체면보다는 나를 먼저 챙겼다
내가 고3때 대학을 안가겠다고 등교거부를 하며 버틸 때도
한발 물러서 달랑 수능성적표만 쥐어주고 또 버틸 때도
부모님 입장에서는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을 대학을 가겠다면서 우길 때도,
지금이나 그때나 학생과 학부모의 입지와 체면은 성적과 대학이름에서 나오는 것이 분명한데도
엄마아빠는 한번도 그런 의미로 속상해하는 모습을 보이거나 나를 다그치지 않았었다
정말로 내 마음이 어떤 건지를 먼저 걱정해주셨다
나는 그걸 항상 알고 있었지만
이제서야 진실로 느끼고 있다
도움의 손길을 잡았더니
세상이 좀 넓어진 기분이다
나는 이 그림이 좋다
열심히 노력을 한다면,
종교인인 경우, 열심히 기도를 한다면,
또는 착하게 산다면
그러면 마땅히 와야하는 결과는 뭘까
그게 공부에서는 좋은 성적이고
사회적으로는 남에게 인정받는, 소위 성공이고
건강하거나 병이 낫는 거고
큰 키, 멋진 외모, 누군가 나를 사랑해주는 것,
이라고 생각한다면
좋지 않다
그냥 확률적으로, 숫자로 따져봐도
'소위' 서울대연고대를 가는 아이들의 수는,
적다. 적게 정해져있다
'소위' 변호사가 되거나 의사가 되거나 '소위' 삼성에 들어가는 사람의 수도
정해져있다. 적다
성인 남자 키 평균이 174인가라고 하던데
그 와중에 키 180이상인 근사한 남자친구가 생기는 경우는
(그것도 나는 가만히 있는데 무작정 와서는 '너같은 애는 처음이야' 하며 나를 열렬히 사랑해주는 경우는)
그냥 확률상으로 적다
그렇게 숫자로 '적게' 정해져 있는 게
기도나 노력이나 선행으로 주어지는 상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한다면,
거꾸로,
성적이 안나오거나, 몸이 아프거나, 돈이 없거나, 외모가 마땅치 않을 때는
(확률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기에 해당하게 되는데도)
열심히 하지 않고, 기도하지 않고, 착하게 굴지 않은,
하여튼 뭐가 돼도 자기가 잘못해서 '벌 받은' 게 되어버린다
+
실제로 그런 가치관을 강요하는 세상에서
자기 자신을 쪽팔려하고 비난하고 불행해하는 경우는 너무 흔하다
성적이 아이들을 결정하는(이것은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뜻을 담고 있다. 때로는 말 그대로 성적이 그 아이가 '된다'. 성적이 낮은 아이는 가치가 낮아지고, 성적이 높은 아이는 그냥 가치가 높아진다) 시스템에서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성적이 안나오면 스스로를 탓하는 경우가 많다
- 걔가 초등학교 때 어학원을 보냈어야 하는데, 저희가 맞벌이를 하느라 종합학원에 보내놓고 신경을 안썼어요. 그래서 듣기가 다른 거에 비해 약해요.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애한테 미안하고 답답해요. 이제 어떻게 해야하죠?
모 외국어고등학교에서는 1학년 때 서먹서먹한 아이들 사이에서 공개적으로 부모님 직업을 거수로 답하라고 했었는데,
변호사, 의사, 중소기업 사장, 고위직 공무원 등등 사이에서 단 두명이었던 자영업자(소위 '장사하시는') 부모를 둔 아이들은
그 순간 자기 부모들이 쪽팔렸다
낳아주고 길러주고 사랑해준 부모가.
'남자친구 키가 컸으면 좋겠어' 가 아니라, '키 180도 안되는 남자를 왜 만나?' 하는 분위기에서는
둘만 있을 때는 좋은 애인을
자기 친구들에게는 소개하지 않으려고 한다, 쪽팔려서.
그리고 '겨우 그 정도' 남자를 만나고 있는 자기가
한심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아이는 그냥 공부를 못하는 것 뿐이다. 엄마도 아이도 잘못된 건 없다
사실 대다수의 부모들은 변호사, 의사, 중소기업 사장, 고위직 공무원이 아니다. 소위 서민이다. 그건 부모의 잘못이 아니다
사랑의 기준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최소한 스스로가 분열되는 그런 기준이라면
그건 애인의 잘못이 아니다. 본인이 가치가 없어서도 아니고.
+
나는 잠시 길거리에서 놀았었어
지금은 강사하니까 그나마 이렇게 치마도 입고 깔끔하지만 (BGM: 야유 '우~우~')
그때는 피어싱에 문신에 머리는 지금처럼 땋고서
꽃무늬만 보면 환장해서 분리수거함 같은 데서 주운 꽃무늬들을 이렇게 막 두르고 다녔었다고
어느날 새벽에 나같은 친구들하고 헤롱헤롱 노는데
양복 잘 빼입은 새끼들하고 시비가 붙은 거야
여러분이 나 보면 알겠지만, 내가 성질은 더러워도 먼저 시비를 걸거나 하진 않아
피곤하니까!
별 일도 아닌 걸로 파출소에 갔는데
그래도 경찰, 하면 뭔가 억울하고 그럴 때 제대로 판단을 내려줘야하는 거잖아
그런데, 들어갈 때부터 대우가 다른거야
그 양복놈들한테는 친절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여기 앉아서 이거 쓰세요'고
우리한테는 삿대질을 하면서 '니들은 꼴이 그게 뭐냐.' 이랬어
지나가던 개새끼는 '부모들이 뼈빠지게 고생해서 키워놓으면 저러고 다니고...쯧쯧쯧' 이러는데
그 혀차는 소리가 얼마나 분한지 모를거다
근데 말했잖아, 별일 아니었다고
경찰새끼 한 놈이 실수를 한거지
정도껏하고 입을 다물것이지 지 말에 지가 취한거라, 이랬어
'니들 중에 서울대연고대, 아니지 모모모모 대학(이렇게 한 일고여덟개를 주워 세면서) 거기 다닌 놈들 하나라도 있으면 내가 보내주겠다'
병신
우리 중에 있었거든, 그 대학 중 하나를 다니던 애가.
코 앞에 학생증을 들이밀고는
벙쪄 있을 때 우리를 다 끌고 파출소를 걸어나왔지
(BGM: 탄성 '이야~')
왜, 통괘하냐?
(BGM: 대답 '네~')
통쾌하지
근데 봐라
이거 통쾌한 얘기가 아니야, 졸라 답답한 얘기지
만약 우리 중에 그 대학 다니는 애가 없었으면,
그럼 어땠을까?
억울하게 뒤집어 썼겠지
그럼, 대학이 우리 자신의 성품이나 그 때 있었던 일과 무슨 상관이 있는데?
없지
그러니까 이건 통쾌한 게 아니야
(소위) 좋은 대학, 좋은 집안, 돈, 권력이 없으면 그냥 당할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야
그럼 너네는 통쾌하게 살 기 위해 좋은 대학에 가려고 기를 쓰는 게 빠르겠냐
아니면 확률상 소위 좋다는 대학에 안가더라도 억울하게 무시당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려고 기를 쓰는 게 빠르겠냐
나야 학원 강사지만.
+
나는 그래서,
언뜻 '공평하다'고 주장하는 그놈의 경쟁 사회가 싫다
출발점은 엄청 불공평한 주제에
게다가 그 목표라는 것도 때로는 우스운데,
결국 모두가 확률적으로 낮은 어떤 목표를 향해가야하고,
무엇보다도 확률적으로 높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싸그리, 게다가 스스로 개새끼가 되어버리는 그게 싫다
그냥 있는 자기 자신이 부끄럽고 쪽팔리고 하찮아지는
그게 뭐야
+
...라고 애들한테 말했다
나는 애들한테는 내 고민을 거의 전부 다 얘기하는 편이다
하지만 기말고사기간이기 때문에
진도를 나가야 했고
본문암기를 하나라도 틀리면 죽여버리겠다고 했다
엉엉
이름씨는 그림을 그린다
또, 판화도 하고 가구도 만들었다
요리는 정말 잘하는데, 특히 해물탕과 고추김치를 푸짐하게 얻어먹었다
나는 이름씨 그림을 하나 샀었다
이름씨가 학교를 졸업할 즈음이었던 것 같다
아닌가
난 원래 음악에만 관심이 있었는데, 그때쯤 전시회를 보러 다니면서 부쩍 그림이 좋아지던 참이었다
이름씨의 그림은 획이 큼직큼직해서
부드러운데 좀 쓸쓸할 때도 있다
영화로 말하면 입자가 큰 저감도 필름을 쓸 때랑 비슷하다
내가 가져온 그림은 가운데 한 여자가 앉아있는데, 저녁같다
역광이라서 여자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는데
뒤에는 감질맛나게 거울이 살짝 비추고 있다
오랫동안 집이 없어서 그 그림을 산 후에도 한동안 이름씨네 집에 두었다가
가로수길 폐가 옆 집으로 이사가면서 드디어 내 집 벽에다 걸어두었고
최근에 본가로 들어가면서 내가 자는 방 서랍장 위에 올려뒀었다
엄마는 막 폐암 수술을 받았다
수술은 무지 잘됐고, 암은 전이되지 않았고, 심지어 몸무게도 늘었다
엄마는 자전거를 잘 타는데도, 왠지 자꾸 넘어지고 다쳤었다
크게 안다쳤기 때문에 동네병원에만 들락거렸는데
어느날 갈비뼈가 다섯개나 부러져서 대학병원에 가게됐다
혹시 부러진 뼈가 다른 장기를 건드리지 않았을까 하고 가슴사진을 찍어보다가
한 의사가 지나가는 말로 CT촬영을 해보겠냐고 했고
엄마는 과잉진료라면서 뾰루퉁해 있었는데, 아빠가 찍어보자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사진에 폐에 있는 종양이 잡혔다
다른 장기는 멀쩡했고, 부러진 뼈도 시간이 되자 곧 나았다
결국 암이었던 그 종양은
한 쪽 폐 위에 예쁘게 자리를 잘 잡고는, 암치고는 얌전히 몇 달을 꼼짝않고 있었다
그쪽 폐를 1/3을 들어내고는 그걸로 끝이었다
엄마는 심지어 오늘, 큰이모랑 같이 김장을 하고 계신다
나는 앞으로 평생 감사하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누가 엄마더러 그렇게 하라고 손을 잡고 이끈 것처럼 그렇게 잘 됐으니까
엊그제 엄마가 퇴원한 다음날,
퇴근해서 집에 왔는데 방이 허전했다
서랍장 위에 있던 그림이 없어졌다
엄마한테 물어봤더니 엄마 방으로 가져갔다고 하셨다
엄마는 그 그림에 있는 사람이 삼신 할매 같다고 했다
꼭 애기를 가져다 주는 삼신 할매가 아니어도,
옛날 시골에는 부엌이나 큰방이나 대들보 아래 꼭 하나씩 있었던
집과 가족을 지켜주는, 그런 종류의 수호신 같다고 한다
- 창 틀 있는데다가 걸어놓고 보려고 했는데, 딱 이만큼이 남더라
그래서 엄마는 그림을 걸지 못하고 벽에 기대놓고서는
어떻게 걸 수 있을까 궁리 중이시다
또, 판화도 하고 가구도 만들었다
요리는 정말 잘하는데, 특히 해물탕과 고추김치를 푸짐하게 얻어먹었다
나는 이름씨 그림을 하나 샀었다
이름씨가 학교를 졸업할 즈음이었던 것 같다
아닌가
난 원래 음악에만 관심이 있었는데, 그때쯤 전시회를 보러 다니면서 부쩍 그림이 좋아지던 참이었다
이름씨의 그림은 획이 큼직큼직해서
부드러운데 좀 쓸쓸할 때도 있다
영화로 말하면 입자가 큰 저감도 필름을 쓸 때랑 비슷하다
내가 가져온 그림은 가운데 한 여자가 앉아있는데, 저녁같다
역광이라서 여자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는데
뒤에는 감질맛나게 거울이 살짝 비추고 있다
오랫동안 집이 없어서 그 그림을 산 후에도 한동안 이름씨네 집에 두었다가
가로수길 폐가 옆 집으로 이사가면서 드디어 내 집 벽에다 걸어두었고
최근에 본가로 들어가면서 내가 자는 방 서랍장 위에 올려뒀었다
엄마는 막 폐암 수술을 받았다
수술은 무지 잘됐고, 암은 전이되지 않았고, 심지어 몸무게도 늘었다
엄마는 자전거를 잘 타는데도, 왠지 자꾸 넘어지고 다쳤었다
크게 안다쳤기 때문에 동네병원에만 들락거렸는데
어느날 갈비뼈가 다섯개나 부러져서 대학병원에 가게됐다
혹시 부러진 뼈가 다른 장기를 건드리지 않았을까 하고 가슴사진을 찍어보다가
한 의사가 지나가는 말로 CT촬영을 해보겠냐고 했고
엄마는 과잉진료라면서 뾰루퉁해 있었는데, 아빠가 찍어보자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사진에 폐에 있는 종양이 잡혔다
다른 장기는 멀쩡했고, 부러진 뼈도 시간이 되자 곧 나았다
결국 암이었던 그 종양은
한 쪽 폐 위에 예쁘게 자리를 잘 잡고는, 암치고는 얌전히 몇 달을 꼼짝않고 있었다
그쪽 폐를 1/3을 들어내고는 그걸로 끝이었다
엄마는 심지어 오늘, 큰이모랑 같이 김장을 하고 계신다
나는 앞으로 평생 감사하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누가 엄마더러 그렇게 하라고 손을 잡고 이끈 것처럼 그렇게 잘 됐으니까
엊그제 엄마가 퇴원한 다음날,
퇴근해서 집에 왔는데 방이 허전했다
서랍장 위에 있던 그림이 없어졌다
엄마한테 물어봤더니 엄마 방으로 가져갔다고 하셨다
엄마는 그 그림에 있는 사람이 삼신 할매 같다고 했다
꼭 애기를 가져다 주는 삼신 할매가 아니어도,
옛날 시골에는 부엌이나 큰방이나 대들보 아래 꼭 하나씩 있었던
집과 가족을 지켜주는, 그런 종류의 수호신 같다고 한다
- 창 틀 있는데다가 걸어놓고 보려고 했는데, 딱 이만큼이 남더라
그래서 엄마는 그림을 걸지 못하고 벽에 기대놓고서는
어떻게 걸 수 있을까 궁리 중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