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사람

2013/04/09 12:58 from 공간/서울 아닌 곳


 

반경삼백미터, 라는 게 있다

곰한테 있어서 겨울잠을 자려고 고심해서 마련한 곰굴같은 데다

그 반경 밖에 있는 건 사실 있으나 없으나 별 상관없는 것들인데,

문제는 항상 국경이다

 

국경에 있는 것들, 낯선 사람들

 

들여보내는 게 아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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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은 대개 아련하게 떠오른다고 하는데(나도 그렇다)

어떤 일을 현재, 지금 여기에서 겪으면서도 아련한, 그런 시기가 있었다

그래서 그런 일들은 추억이 되면

가슴을 저민다

 

과거의 관성과 미래의 가능성을 모두 버린 후

나는 결국 제자리로 돌아왔다

선과 악에 대해서는 많이 들어왔지만,

단순한 물리법칙으로도 사람이 죽을 수 있다는 그 당연한 사실은

꼭꼭 감추어져 보이지 않았었다

너무 낯설어서

나는 심지어 놀라지도 않았다

 

초겨울 목이면 겨울냄새가 났었다

술이 깰 즈음 새벽에도

새벽냄새가 났고

비가 오려고 할 때는 젖은 시멘트 냄새가 났다

지금은 가을에도, 새벽에도, 비가 올 때도

그저 춥다

 

다시 또 여름이 왔고, 내가 올해 하려던 일들은 실은

지난 여름이든가 아니면 그 전 해 여름에 하려던 것이었다

그렇게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와중에도

어느날 문득 거울을 보면 얼굴이 달라져 있다

남아있는 기억은 없지만

몸은 손끝에 붙은 자취까지도 떨어져나가질 않는다

그리고 어떤 노래들은 확실히,

그리고 정확히,

그 시절을 불러온다

  

 

 

 

나의 두려움은 머리가 아니라

몸에서 나온 것이다

내 분노도 가슴이 아니라 몸에서 나왔다

그래서 그걸 참으려면 몸의 떨림이 멈출 때까지 울어야 한다

하지만 그 모든 건

리튬을 내 마음대로 끊은 것에 대한

단순한 화학적 반응이라고 한다

 

 

 

 

 

+

 

 

 

 

 

I'm dreaming about the day when I can see you there...my side

by my side

...

 

I stop to say hello

'cause I think you should know, by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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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n, Dong-Ju(or Yun, Dong-Ju)   <Prologue>

"Let me have no shame
Under the heaven
Till I die
Even the sound of wind
passing the leaves
Pained my heart.
With a heart singing stars.
I will love all dying things.
... And I must step my path
That's been given to me.

Tonight also
The wind sweeps past among the stars."

(translation by The Korea Times, 2009)

윤동주 <서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와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해방 6개월 전에 일본 감옥에서 세상을 떠난 윤동주 시인

작곡가 윤형주의 아버지는 그 조카의 유해를 가지고 한국으로 온다

그리고 "시도 노래다. 시 그 자체도 노래다. 작곡으로 시를 건드리지 말거라" 라고 윤형주에게 말했다고 한다.

 

 

 

+

 

 

 

...그러나 바로 그 다음 세대에 이르자 폴 발레리는 1893년 시르크 데테 원형건물에서 개최된 라무뢰 연주회에 대하여 언급한 다음 이렇게 덧붙여 말했다. "홀의 맨 뒷자석에는 벽을 이루며 늘어서 있는 입석 손님들의 그늘 속에 한 기이한 감상자가 앉아 있었는데 그는 바로 각별한 호의를 입어 시르크 회관에 입장하곤 하는 스테판 말라르메였다. 그는 베토벤이나 바그너의 마력에 매혹되긴 하지만 동시에 고차원적인 라이벌 의식에서 오는 저 순결한 고통을 맛보았다. 그는 마음 속으로 항변하고 잇었다. 그는 또한 위대한 언어예술가로서 저 음의 신들이 그들 나름대로 내뿜으로 퍼뜨리는 바를 판독하는 것이었다. 말라르메는 어떤 숭고한 질투심에 가득 차서 연주회장을 나섰다. 그는 너무나 강력한 음악이 그에게서 훔쳐간 신비스럽고도 중요한 그 무엇을 우리의 예술을 위하여 다시 찾아올 방법이 없을지 절망적으로 모색했다. 시인들은 그와 더불어 눈이 부시고 풀이 죽어가지고 시르크 회관을 나서는 것이었다.

 이 마지막 문장은 시인들, 눈부심, 풀죽음(눈부심이란 빛이 너무 강해서 눈이 먼다는 뜻)이라는 세 마디 말이 지닌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이해되어야 마땅하다. 시인들이라면 필시 그럴 것이다......음악은 시에 너무 가까워서 시의 생명을 앗아갈 위험이 있다. 그 점이 바로 멜로디로 옮겨놓으면 불협화음으로 변해버리는 시의 위험이다. 그래서 빅토르 위고는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내 시와 나란히 음악을 갖다놓는 것을 금지한다!"  ......

음악이란 것이 과연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일까? 아마 그럴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순수하고 가장 엄격한 방식으로......

 

                                       -미셸 투르니에 <짧은 글 긴 침묵> 

 

 

 

+

 

 

 

오, 그래야 하는 군, 하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그냥 그대로 깊이 깊이 공감하는 거다

마르셀 칼리페 Marcel Khalife는 시인 다르위시 Mahmoud Darwish의 시로 노래를 만들었고

함께 무대에 서기도 했다

그 음악들은 아름답다

온 삶과 음악으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신했던 마르셀 칼리페와

나는 느낄 수 없지만, 아름다운 아랍어의 운율을 현대적으로 끌어와서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던 마흐무드 다르위시와

그들이 서로 바라보며 그 시와 음악을 사람들을 향해 뿜어내는 건

그 자체가 아름답고도 의미있는 예술이었다

 

나는 어어부프로젝프밴드를 몹시 좋아하는데

백현진의 '시'도 그의 음악과 함께 하나가 된다

그 음들이 아니면, 도무지 그 말들이 살아나지가 않는다

 

 

+

 

 

나는 해독이 안되는 세상을 분석하려 애쓰기 보다는

나 좋을 대로 쪼개고 재배열해서 멋대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는데,

예를 들어 문제 상황이 생겼지만 도무지 적절하게 대처할 수가 없을 때면

그 문제가 아예 없었던 척을 한다

그 짓거리를 하다가 쌓여서 마음의 병을 키우긴 했지만

어쨌든 단기적으로는 꽤 효율적인 방법이다

 

최근에 본 시리아 연극 <카메라를 봐주시겠습니까>에 나오는 등장인물처럼,

나도 카메라 앞에서 솔직한 척, 드러낼 수 있는 범위가 있고(이것만으로도 꽤나 솔직하게 들춰낸 건 맞다)

카메라를 꺼주시겠어요, 한 다음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데,

이를테면

내가 이스라엘 트랜스라고도 불리는 싸이트랜스, 그중에서도 이스라엘 디제이들을 몹시 좋아한다는 건 전자에 해당하고,

...

메탈리카가 텔아비브에서 공연을 했으며, 나는 침묵을 했고, 그 2009년을 내 인생에서 통째로 들어냈다는 사실은

후자에 해당한다

 

효율적으로 뭔가를 하려면

일반화 능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방을 치울 때도 마찬가지다

서재에 있는 책상 오른쪽 두번째 서랍에는 내가 수집하는 지포라이터 부수물들이 들어 있는데

정리한 지가 오래돼서 껍데기랑, 손보지 않은 라이터 몇 개랑, 라이터 돌이랑 심지가 엉켜있어서

그것만 정리하는 데도 하루는 걸릴 것이다

그 생각을 하면 절대 방을 치울 수가 없다

방을 치울 때도 디테일은 과감하게 무시하는 일반화 능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당분간은 음악과 시와 이야기(삶이라고도 한다)에 대해 헷갈리는 상태를 내버려두는 게 나을 것 같다

내 친구들이 독일에 있는데

나는 소심하게 혼자 루프트한자 항공 보이콧에 참여 중이고

가장 싸고 편하게 독일에 갈 방법이 없어졌다

 

최근에 아픈 아기를 위해 결혼 신고를 하게 되는

어떤 비혼자 아가씨와 청년의 얘기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사람이 시스템에 대항하는 게 어려운 건

폭력도 폭력이지만

자신에게 주어져 있는 가능성(좀 더 편하거나 쉽거나...혹은 목숨을 구하거나 하여튼)을 눈 앞에 두고도

포기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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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KE THE CONNECTION.
"And suddenly, I looked at the bull. He had this innocence that all animals have in their eyes, and he looked at me with this pleading. It was like a cry for justice, deep down inside of me. I describe it as being like a prayer - because if one confesses, it is hoped, that one is forgiven. I felt like the worst shit on earth."

This photo shows the collapse of Torrero Alvaro Munera, as he realized in the middle of the his last fight... the injustice to the animal. From that day forward he became an opponent of bullfights.
Via McKenna Grace Fisher
Via Synthian Sharp





+





An Ex-Bullfighter Tells His Story

INTERVIEW BY TONI L. QUEROL
VICE.COM
PHOTO COURTESY OF ÁLVARO MÚNERA

A bull named Terciopelo [Velvet] gored the Colombian bullfighter Álvaro Múnera, aka “El Pilarico,” in 1984, confining him to a wheelchair for life. Múnera was 18 years old back then. His best friend, “El Yiyo,” was gored to death months later, and the manager of both bullfighters committed suicide three years after that.

Múnera became a hardcore animal rights defender and nothing less than the Antichrist for tauromachy [the art of bullfighting] aficionados. He currently works in the Council of the City of Medellín, using his position to defend the rights of disabled people and to promote anti-bullfighting campaigns.

vice.com: How did you decide to be a bullfighter?

Álvaro Múnera: I was born in Medellín, where my dad had taken me to see bullfights since I was four years old. The atmosphere at home was totally pro-taurino [taurino is the Spanish adjective for everything relating to bullfighting culture]. We didn’t talk about football or any other thing, it was just bulls. Bullfighting was the center of the world for my dad. Since I grew up immersed in this taurino atmosphere, it was logical that at the age of 12, I decided to be a bullfighter.

I started my career and five years later I became successful at the Medellín Fair. This was when Tomás Redondo, who was the manager of El Yiyo, agreed to be my manager too. He took me to Spain. I fought 22 times in Spain until on September 22 of 1984, I was caught by a bull. It gored me in the left leg and tossed me in the air. This resulted in a spinal-cord injury and cranial trauma. The diagnosis was conclusive: I would never walk again. Four months later I flew to the US to start physical rehab, and I seized the opportunity to go to college. The US is a totally anti-taurino country, and due to my former profession I felt like a criminal. I became an animal rights defender. Since then I’ve never stopped fighting for every living being’s right not to be tortured. I hope I will continue to do so until the very last day of my life.

vice.com: Did you ever think of quitting bullfighting before that bull confined you to a wheelchair?
Below right: Munera in his youth in Spain shortly before sustaining his life-changing injury.

Yes, there were several critical moments. Once I killed a pregnant heifer and saw how the fetus was extracted from her womb. The scene was so terrible that I puked and started to cry. I wanted to quit right there but my manager gave me a pat on my back and said I shouldn’t worry, that I was going to be an important bullfighting figure and scenes like that were a normal thing to see in this profession. I’m sorry to say that I missed that first opportunity to stop. I was 14 and didn’t have enough common sense. Some time later, in an indoor fight, I had to stick my sword in five or six times to kill a bull. The poor animal, his entrails pouring out, still refused to die. He struggled with all his strength until the last breath. This caused a very strong impression on me, and yet again I decided it wasn’t the life for me. But my travel to Spain was already arranged, so I crossed the Atlantic. Then came the third chance, the definitive one. It was like God thought, “If this guy doesn’t want to listen to reason, he’ll have to learn the hard way.” And of course I learned.

vice.com: Is there a lot of regret that you let it get to the point where you became paralyzed?

I think it was a beautiful experience because it made me a better human being. After convalescence and rehabilitation, I started working toward the goal of amending my crimes.

Many animal rights defenders applauded your decision, but many others say they can’t forgive you. They even call you “mass murderer” to this day.


TERCIOPELO, the bull that wounded Munera. Long departed,

There are people who think that I’m just resentful for the accident. That’s absurd. I’ve rebuilt my life and dedicated it to helping hundreds of disabled people get ahead, in addition to fighting for animal rights. On top of that, I don’t know of any resentful person defending his victimizer. A bull confined me to a wheelchair and another one killed my best friend! I should reasonably be the last person on earth to care about bulls.

But as for the people who cannot forgive me for what I did to so many bulls? I have to say that I understand them and agree, to some extent. My only hope is to have a long life so that I can amend my many crimes. I wish to have the pardon of God. If He doesn’t pardon me, He has good reasons not to do so.

vice.com: Chiquilín, another repentant bullfighter, claims to have seen bulls weeping. He says that he cannot kill even a fly nowadays.

I take my hat off to that man. He’s a real hero who learned his lesson through reason and thinking.

vice.com: Are you in touch with any other repentant bullfighters?

Truth be told, I don’t know if there are more repentant bullfighters. What is indeed known is that there are more and more ex-bullfighting aficionados every day. These are people who realized how macabre the show they were supporting really is, and so they stopped going to the bullrings. Sometimes they tell me their personal experiences and thank me for the articles I write.

vice.com: What was the decisive factor that made you an animal-rights defender?

When I went to the US, where I had to face an antitaurine society that cannot conceive how another society can allow the torture and murder of animals. It was my fellow students, the doctors, nurses, the other physically disabled people, my friends, my North American girlfriend, and the aunt of one of my friends, who said I deserved what happened to me. Their arguments were so solid that I had to accept that it was me who was wrong and that the 99 percent of the human race who are firmly against this sad and cruel form of entertainment were totally right. Many times the whole of the society is not to blame for the decisions of their governments. Proof of this is that most people in Spain and Colombia are genuinely anti-bullfighting. Unfortunately there’s a minority of torturers in each government supporting these savage practices.

vice.com: If the people of both countries are against bullfighting, why do bullfights still exist?

Well, I believe that bullfighting eventually will disappear if it doesn’t remove its elements of torture and death. There’s a generational shift in values, and most well-educated young people are against cruel traditions.

vice.com: In your articles you’ve associated tauromachy with a lack of culture and sophistication on the part of its aficionados. Isn’t this a bit simplistic? How do you explain that intelligent people like Ernest Hemingway, Orson Welles, John Huston, and Pablo Picasso were into bullfighting?

Look, to be a talented person doesn’t make you more human, more sensible, or more sensitive. There are lots of examples of murderers with a high IQ. But only those who have a sense of solidarity with other living beings are on their way to becoming better people. Those who consider the torture and death of an innocent animal a source of fun or inspiration are mean-spirited, despicable people. Never mind if they paint beautiful pictures, write wonderful books, or film great movies. A quill can be used to write with ink or blood, and many terrorists and drug dealers of the 21st century have university diplomas hanging on the wall. The virtues of the spirit, that’s what really counts in God’s eyes.

Thanks to Julio Ortega Fraile (findelmaltratoanimal.blogspot.com)
By TONI L. QUEROL 3 years ago

(http://open.salon.com/blog/addisonpg/2012/03/05/alvaro_munera_an_ex-bullfighter_tells_why_he_became_an_animal_rights_activ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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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보세요..
1. 왕재산 사건 1심 판결문
2. 고철,님이 정리해주신 간단 정리 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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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반국가단체를 조직했다는 이유로 무고한 사람을 잡아넣는다
2. 당연히 그들은 변호인단과 함께 증거를 수집해서 논리적으로 무죄를 주장한다
3. 그 증거들을 근거로 반국가단체 결성은 무죄라고 결론이 난다(구형 최고 무기징역)
4. 대신 그들이 적극적으로 증거를 제시하고 무죄를 주장했다는 이유로(방어권 남용) 가중처벌까지 더해서, 법원은 유죄를 선고한다(1심 판결 최고 9년)
5. ......
6. 이해가 가는가?
.
.
.
.
.
.

7. 안가면 당신은 정상인.

이번 판결이야말로
<국가보안법>의 목적이 무엇이고 어떻게 쓰이는지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번 판결을 보면, 그들이 스스로 고백하는 국가보안법의 실체를 알 수 있다.




'왕재산 사건'
놀랍도록 어처구니없는 간첩사건
언론은 이 뻔한 논리없음조차 다룰 생각이 아예,
아예 없다


민주주의를 글로 배워서 그러나...


아니지, 민주주의는 우리가 저들에게 주권을 합법적으로 내맡긴 거 맞지
그럼, 민주주의를 너무 제대로 배워서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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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팎 깔맞춤

2012/02/27 01:11 from 공간/서울

나는 이 광고가 마음에 든다
사진을 찍지는 못했지만 저 사람들이 따로따로 나온 컷들(예를 들어 뒷줄 가운데 있는 청년은 피자를 입에다 구겨넣고 있다)도 있는데
그게 더 좋다


스타일은 때로
표면적인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하기도 한다
소피스트들은 '자신의 철학에 맞게' 옷과 신발까지 깔맞춤을 했다고 하던데.

가끔 노숙자들을 보면서 드는 생각인데,
왜 중국이나 한국이나 팔레스타인이나(다른 나라는 아직 못겪어봤음)
노숙자들의 패션은 그렇게나 멋진 것일까
특히 정신이 약간 나간 사람들(예를 들어 허공에 대고 말을 한다든가)의 경우가
특히 더 그렇다


+


첫단추를 잘못 꼈던 걸 기억하고 있다
애써 묻어두었더니
나중에는 애쓰지 않아도 혼자 잘 묻혔을 뿐
제대로 기억하고 있다

거기다가 얼마나 공을 들여 둘둘 감싸고 동여매고 틀어막고
옷을 껴입히고 장신구를 달아댔는지
그걸 벗겨내는 것만으로도 진이 빠진다
잘못 끼워진 첫단추를 찾아야 할텐데
매번 여전히 '그때의' 스타일을 잃지 않은 고고한 의복들(최근 사들인!)을 입고 있으니
또 매번 그걸 벗겨내는 반복반복반복반복을 하는 중이다

내 눈이 가려져 남이 보이지 않을 때는 어찌나 당당했던지.

십자로 짓이겨져 붙어있던 눈은 떠졌는데
대신 화염을 내뿜던 입이 십자로 봉인되었다
주변에 아무도 없었는데도 뭐가 그리 두려운지 웅크리고 벌벌 떨고 있었는데
엄마아빠가 오자 마음이 놓였다

엄마가 내게 담요를 덮어주려는 걸 내가 싫다고 했는데,
엄마는
'가리려고 그러는 게 아니야. 추울까봐 그러는 거야.'
라고 하셨다

그 말,
실제로도 들어본 적 있다



+



어딜가든, 무엇을 걸치든,
내가 한 가운데 연필심을 박고 있는한
내가 걸어가는 곳마다 시커멓게 자취가 남는 건 바뀌지 않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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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귤

2012/01/21 04:28 from 공간/서울

설거지하고 있는데 엄마가 식탁에다 귤을 까두었다
- 귤이 하나 냉장고에 남아있었어. 얼마나 외로웠을까, 먹어줘야지
하고 엄마가 말했다
최근에 베란다에 둔 배랑 사과가 맛있어서 냉장고를 확인 안하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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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팔레스타인을잇는다리>라는 데서 일했었다
<팔다리>는 민주주의를 '지양'하는 단체였는데,
이끄는 역할을 하는 분 건강이 흐느적, 하면서 문을 닫게 되었다

팔레스타인 관련해서 일을 하는 단체 중 <팔레스타인 평화연대>라는 데도 있다
잘은 모르지만 내가 보기에 <팔연대>는 진짜 단체같다
그러니까 구성원이 바뀌어도 색은 달라질지언정 큰 맥락은 굴러갈 수 있는 그런 힘이 있는 것 같다
나는 어느 시기 팔연대의 특정 활동을 그닥 좋아하지 않았던 적도 있다
그리고 지금은 팔연대가 하는 일에 방긋 웃으며 응원을 하고, 참가하지 못하는 미안한 마음이 크고,
댓글이라도 하나 달려고 노력하고 있다
팔연대의 활동은 '나라면 그렇게 하지 않을' 일이거나(잘못됐다는 게 아니라 취향을 말하는 거임)
'내가 하지 못하는' 일이거나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다
그런 것들에서 나는 의미를 찾을 수 있게 되었다
팔연대에 한 사람을 알고 있는데, 그 사람이 만든 변화다


2.
팔레스타인을잇는다리, 는 문화교류 단체였다
사실 '문화'란 게 범위가 무지막지 하던데 우리가 주로 다뤘던 건,
잘 나가는 음악, 잘 나가는 글, 잘 나가는 그림, 등이었다
나는 때로 팔다리의 일들을 즐겼고, 어떤 일은 벌이기도 했고,
또 어떤 것들은 '권위적'이라며 투덜거렸다
팔다리를 이끌던 사람과 나는 기본적인 눈은 비슷했는데
취향, 특히 문화에 대한 취향은 달랐다
그는 컴퓨터에 손만 대도 망가뜨릴 수 있는 능력이 있었고
나는 웃는 표정으로도 분위기를 싸늘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었다
그는 작가였고, 난 음악을 좋아했다
그리고 우린 기본적으로 남을 위해 뭘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팔레스타인에 가서도 게스트하우스에 쳐박혀 술만 마셔대서 친구들을 걱정시켰고
('팔레스타인은 생각보다 위험하지 않아. 나와서 좀 돌아다녀' 라는 말을 들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나와서는 술집에 쳐박혀서 아락과 맥주를 마시며 꼬장을 부려댔다

나는 팔다리에서 문화에 대한 걸 많이 볼 수 있었다
특히 라말라에 넘쳐나는 문화적 활동들, 외국 NGO들, 그리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들.
한 발만 내디뎌도 우리 역시 그 반경에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때로는 뭐가 '옳고' '그른지' 헷갈리기도 했다
난 대부분 내 존재가 민폐라는 기분으로 돌아다녔다
팔레스타인이건 어디건, 서로 다른 문화가 만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낯선 것에 대해서는 우선 반발심이 들었다
우리가 다루었던 건 '질 좋은' '고급 문화'들이었는데,
좀 더 대중적인 것들, 특히 영화처럼 기술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분야에서는 그들의 노력이 '조잡해' 보일 때도 있었다
그 눈은 항상, 계속, 쭉, 나를 따라다녔다


3.
나는 '분노'를 가지고 이라크에 갔었다
이라크에 사람이 있건 없건 신경도 안썼다
그런데 거기서 만난 친구들은 나에게 뽀뽀를 해주고, 내 손을 잡아주고, 야단을 치고, 걱정을 해줬다
이라크에서 돌아온 후,
나는 그 쉽다는 스페인어와 남미에 가겠다는 막연한 인생계획과 전공이었던 불교를 갖다버리고
말도 안되게 어려운 아랍어와 종종 여행금지지역이 되는 분쟁지역들과
복잡한 역사를 무조건 같이 공부해야하는 이슬람으로 전향했다
전향해야했다
그렇게 되었다
사랑은 어쩌다가 싹텄다

이라크에서 만난 사람들은 여러가지 동기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실체가 뭐였든지간에 내 눈에 비친 것만 보자면
명예욕도 있었고, 관성도 있었고, 희생정신도 있었고, 모험심도 있었고, 아픔도 있었다
나의 경우에는 다시 말하지만 분노였다
대개 명예욕을 가진 인간들이 뻘짓을 해댔고
그래서 나는 그 인간들과 명예욕을 싸잡아서 욕했다
'도대체 내가 뭘 잘못한 거니' 라는 질문까지 들었지만 난 끄떡도 안했다
하찮고도 하찮아 보였고 손발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고
간혹 그런 그들을 위해 통역을 해야할 때면 토악질을 했다
성질이 나면 주변 물건을 집어던지면서 소리를 질러댔는데
그런 나를 참아준 사람들도 있다
그러니까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뭔가를 찾아갔던 거다


4. 
나는 대학에서 동성애인권운동에 막연한 관심이 있었다
하지만 내 취향은 그때도 명확했고, 인권운동단체들의 방식과는 어울리지 못했다
대학에서 세미나를 구실로 몰려든 사람들과 술을 마시면서 친해지는 게 내 방식이었는데
때로 사람들 앞에서 무언가를 해야할 때면
'보여주기'가 가장 큰 목적이었다
전혀 이상하지도 다를 것도 특이할 것도 없는 우리들이, 게이고 레즈비언이고 트랜스젠더고 하여튼 그렇다는 걸
눈 앞에서 자꾸 얼쩡거려서 익숙해지게 만들고 싶었다
영화제를 열었고, 영화제에 참석했고, 영화를 만들었고... 사랑에 빠졌다
난 첫사랑을 8년째 짝사랑 중이었고, 새로운 인연을 만났고,
그 인연 중에 청년이 있었고, 그가 내게 특별한 존재라는 걸 인정하기 전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나는 스스로 헷갈리지 않는 걸로 고민하기 보다는
레즈비언-이성애자-바이섹슈얼-에라모르겠다, 로 전향해갔고
그 과정이 결코 편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마냥 어렵지만도 않았다
그냥 그게 내 삶이었다

내가 가장 싫어하던 부류 중 '정치적 레즈비언'이란 게 있다
간단히 말하면 이성애자인데 '정치적인' 이유로 여성과의 연대를 섹슈얼한 부분까지 확장한 셈이다
나는 그들이 역겨웠다
하지만 여전히 모호한 지점들은 남아있다
나는 애초에 경계에 대한 개념이 없는 인간이라, 그렇게 모호한 지점들이 눈에 밟히면 허공에 붕 뜬다
어떤 아가씨들은 성폭력의 경험을 안고 있다
그들은 남자와 사랑에 빠질지언정 섹슈얼한 관계를 가질 수는 없을 때도 있다
또는 애초에 남자를 멀리하게 되기도 한다
그들이 여성 게이, 즉 레즈비언 사회 안에서 관계를 찾고 안착해 가는 것을
나는 '당연하게' 바라보았다
그건 내가 인정하거나 판단하거나 용납할 문제가 아니었다
그냥 그들의 삶이었다
나 자신이 경계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특히 여성들에게서 많이 나타나는 바이섹슈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하지만 정치적 레즈비언들만은 싫었다
그들의 노력, 시도, 주장, 그게 뭐든 간에 거기에는 '가식'이 들어있었다
그건 실제로 그 삶을 '삶'으로 사는 사람들의 모든 고통과 사랑과 시간에 대한 모욕이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진 않다


5.
방법적인 타당성, 에 대해서도 오랫동안 생각했다
그렇다면 노동자의 주장은 노동자가, 페미니즘은 여성들이, 퀴어운동은 이반들이,
때로는 '그들만이' '제대로' 말할 '자격'이 있는 건지.
그런 부분이 있지만 그렇지 않기도 하다
그들 말을 듣고 함께 웃어줄 사람들이 많으면 좋은 거다

대안문화판에는 재수없는 인간들이 있었다
나는 부모가 의사고 교수지만 학교를 자퇴했고 지금은 영화를 찍고 있지요, 하고 비스듬히 앉아서 말하는 인간들.
나는 나 자신을 그들과 분리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다
나 역시 고위공무원인 아버지와, 수박이 차있는 냉장고가 있는 본가와, 그럴듯한 대학에 적이 있었다
때로 나에게 그런 것을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나는 실속없는 환호보다는 진국, 그러니까 평생 나를 사랑해주시고 내 곁에 있어주신 부모님이 훨씬 훨-씬 소중했기 때문이다
한번도 내가 받고 태어난 환경과 내게 주어진 것들을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그것에 감사하되, 좀 다른 길에 서 있는 나 자신이 좌표를 잘 찍을 수 있도록
편협하되 재수없는 인간이 되지 않도록 애를 쓸 수밖에 없었다
어느날 나는 순식간에 '강남좌파'가 되었는데
즐기기로 했다
덕분에 강남구는 선거장소가 크게 바뀌지 않아서
내가 원하는 사람들에게 따박따박 투표하는 데도 어려움이 없었다


6.
맥도날드와 스타벅스에는 발을 딛지 않는다
이스라엘에 대한 보이콧의 의미다
아무리 추워도 스타벅스에 가서 커피를 마실 수는 없다
난 팔레스타인에 사랑하는 친구들이 있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음악 중에 싸이트랜스, 라는 게 있다
그 중에서도 좀 강한 쪽에 이스라엘 DJ들이 많아서 이스라엘트랜스, 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실제로 그들의 공연에서는 이스라엘 국기가 나부끼기도 한다
나는 싸이트랜스 파티를 좋아한다
그리고 거기에서 이스라엘 국기를 보면 가슴이 조여든다
싸이트랜스에 대한 보이콧은 미뤄둔 상태다
어찌해야할 바를 모른다는 게 맞는 말이다



7.
가장 중요한 태도 중 하나,는
난 팔레스타인이, 이라크가 희생자라고 해서, 거기 내 친구들이 있다고 해서,
팔레스타인이나 이라크가 '선'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는 거다
이스라엘은 '악'이 맞다
그게 팔레스타인을 '선'으로 만들지는 않는다
이라크나 팔레스타인에도 개새끼들은 널렸다
허벅지를 슥 만지고 가는 개새끼들도 있고, 저질스러운 욕설을 뱉는 것들도 있고
더 어렵게는 어떤 상황에서도 희생자 자태가 몸에 배서 오히려 그걸로 상대를 공격하는 자들도 있었고
난처한 상황을 견디지 못해 인연을 끊으려드는 좋은 친구도 있었다

내가 Rim Banna를 알게 된 건, 팔레스타인 문제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이라고 해서 Rim Banna를 좋아하는 건 아니다
그런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Rim Banna는 진실로 좋다

그 자태는 사실 명확하면서도 모호하다
정의가, 분노가, 의무가 예술로 이끄는 가이드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그렇게 사람들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후에도 그 정의나 그 분노나 그 의무가 예술에 앞서있다면
그건 훈련소에 맡겨놓은 강아지와도 같다
때로 반려동물 방에서 일어나는 소란도 비슷한 맥락이다
- 푸들 꼬랑지를 꽃분홍으로 염색하다니 동물학대입니다! (개인적으로 염색은 좋아하지 않는 편)
- 개가 저렇게 살 찔 때까지 먹이다니 동물학대입니다! (개인적으론 별 생각 없는 편)
- 목줄이 너무 쪼여보여요, 동물학대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사진이 그렇게 나오는 것일 뿐 주인은 강아지를 사랑한다)
- 저럴 바엔 안락사시키는 게 낫지 않나요? (어려운 문제다)
- 저렇게 훈련을 잘 받은 강아지라니, 동물학대입니다! (개인적으로 훈련은 좋아하지 않지만 학대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때로 어떤 훈련은 학대가 될 수도 있고
어떤 강아지는 이상한 걸 안 먹여도 살이 쪄가기도 한다

어렵다
명확하지만 모호한 부분이 있다
어떤 동기로든 예술로 다가갈 수 있다
좀 더 조심히 다가가는 게 안전하긴 하다
하지만 시간이 없을 때도 있다
그 애정이 살아있는 거라면, 시간이 지나서 알게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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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치,하면 왠지
두더지가 떠올랐다
그러니까 두더지의 물고기 버전.

지인이 곰치국을 먹었다고 한다
난 요즘 부모님과 사이가 좋은데, 다 심리 상담과 약과 신앙과 나의 노력 덕분이다
아, 부모님이 항상 나를 기다려줬다는 게 먼저다
그래서 부모님과 놀러를 다니는데
어느 해안도로를 따라서 어느 해수욕장에 들어갔더니(고유명사 기억 잘 못함)
건물에 온통 곰치국, 곰치국, 곰치국, 곰치국, 곰치국, 곰치국, 곰치국, 곰치국,
하고 써 있었다
곰치국이 테레비에 나온 적이 있다고 하는데
테레비를 안봐서 잘 모르겠다
곰치국을 먹고 온 지인은
'조낸 맛있어요'
라고 했다
하긴,
그러니까 온 사방이 곰치국, 곰치국, 곰치국, 곰치국, 곰치국, 곰치국, 곰치국, 곰치국, 이었겠지

곰치국, 하면 나는 두더지국, 하고 어감이 같다
거부감이 드는 건 아니고, 오히려 먹어보고 싶기도 한데
그냥 이름에서 나는 느낌이 그렇다
두더지국을 먹어보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다
아마 오랫동안 페스코채식을 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페스코 채식을 하는 사람들은 육고기는 안먹지만 물고기는 먹는다



   
    
 

   
  

곰치 곰치 곰치 곰치 곰치










곰치가 쳐다본다






나는 채식을 안 한지 오래됐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홍초불닭을 먹기 시작했고
수년 동안 안먹은 걸 보충하려는 듯, 고기를 골라먹기 시작했고
안주도 막 고기를 시켜 먹다가
몸이 아파버려서, 실은 고기 때문에 아픈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었다

원래도 물고기는 좋아하는 편인데
아구찜도 잘 먹고 회도 잘 먹고 홍어도 엄청 잘 먹는다
그러니까 곰치국도 문제없다

하지만 굴이나 멍게는 싫다
굴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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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일러 아저씨한테 반하게 된 것은
표정 때문이었다
쫌 어디서 맞고 다닌 듯한 얼굴에 서늘하게 웃는 표정이 있는데
나는 세상에서 그거에 제일 약하다
처음 만나서 인연인 걸 알았던 사람들은 있었지만,
그냥 얼굴만 보고 반한 건 처음이다
처음이어서,
가슴께에 이름표가 달려있는지 확인도 못했고
왼손 약지에 반지가 있는지도 확인 못했고
그런 게 지금 중요한 게 아니란 걸 주위 사람들에게 인식시키는 데도 성공하지 못했다



아니지,
그 전에 할 일이 있는데
지금이 나한테는 일종의 차분한 기간, 이기 때문이다

1. 우선은 5월까지 기다려야 한다
   5월은 되어야 새벽에도 날이 따뜻해지는데, 난 요새 추위를 많이 탄다
   그리고 새벽에 밖에 앉아있고 싶다 졸린 건 싫은데 새벽냄새는 좋다
2. 일년동안 안만났던 가까운 지인들을 먼저 만나야 한다 순서란 게 있으니까
3. 한달 묵주기도 클리어... 그 정도 노력은 해줘야 손목에 십자가를 새길 수 있을 것 같다
4. 그리고서 손목에 십자가를 새긴다 빅문오빠가 있으면 좋겠지만 다른 타투이스트도 괜찮다고 한다
5. 줄어든 귀를 다시 늘린다 목표는 12mm, 좋아하는 것들을 다시 찾아서 하는 중이다
6. 약을 먹지 않아도 상태가 갑자기 나빠지지 않을거라는 확신이 있을 정도로
   약을 오래 먹은 상태였으면 좋겠다
7. 주양쇼핑 지하에 있는 빵을 종류별로 다 먹어본다 싸고 크고 맛있고 나는 빵을 좋아하니까
8. 담배를 끊는다, 오늘부로 다시 끊었다
9. 돈을 모은다 모으는 게 아니라 아낀다
10. 메모를 한다

일부러 숫자를 맞춰서 10개다

보일러 아저씨, 기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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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돌아온 스펙타클 청년의 페북에서 퍼왔습니다
홍대에 있대요
닭발 좋아하는데.





+

이건 개새.
사진은 불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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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부터 엄마는 입을 거랑 먹을 거를 챙기고
아빠는 갈 곳을 꼼꼼하게 수첩에다 적었다
운전은 아빠가,
운전 못하는 나는 조수석에,
아픈 엄마는 뒷자석에 누워서
아침에 출발할 때부터 눈이 왔다
눈 비스무레한 싸레기가 전에 한번 오긴 했었지만
제대로 펄펄 내리는 눈은 처음이었다

                 

고치같은 자태의 엄마                                                                  사진기를 피하시는 아빠



갈매못은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올라가보지 못했다.
삼차원입체십자가가 멋있다



가족여행에서 스타일따위는 중요하지 않은거다! 따뜻하면 제일 좋은거다!
이날 아침 엄마는 나를 위해 솜바지를 준비해놓으셨지
하지만 차마 그것만은 입을 수가 없었어
미적감각은 인간과 역사에 대한 예의라고 항상 말해왔기에



                  

공세리는 영화촬영의 배경이 되기도 한다고 했다                                 엄마가 영화의 한 장면처럼 눈을 바라보고 계셨다
성당에 들어가서 거금 만원을 내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는데
나와보니 눈이 펄펄 내리고 있었다
                                                                           


깔맞춘 아빠 엄마



점심에는 간장게장을 먹고 저녁에는 매운낙지볶음을 먹고
차 안에서는 엄마가 개인별로 싼 과일과 떡과 달걀과 고구마를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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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싸움

2011/12/07 11:28 from 공간/서울

재방송을 보는데 곰들이 마구 싸웠다

이 세상에는 마치 우주의 법칙이 제자리를 찾은 것 같은 것들이 있는데,
예를 들어,
주스는 오렌지주스
쨈은 딸기쨈
인형은 곰돌이인형

하지만 실제 곰돌이는 무서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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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 the Field>   by Gabriel Boray








나는 이 그림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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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의 대화2

2011/11/23 07:25 from 공간/서울

열심히 노력을 한다면,
종교인인 경우, 열심히 기도를 한다면,
또는 착하게 산다면

그러면 마땅히 와야하는 결과는 뭘까

그게 공부에서는 좋은 성적이고
사회적으로는 남에게 인정받는, 소위 성공이고
건강하거나 병이 낫는 거고
큰 키, 멋진 외모, 누군가 나를 사랑해주는 것,
이라고 생각한다면

좋지 않다

그냥 확률적으로, 숫자로 따져봐도
'소위' 서울대연고대를 가는 아이들의 수는,
적다. 적게 정해져있다
'소위' 변호사가 되거나 의사가 되거나 '소위' 삼성에 들어가는 사람의 수도
정해져있다. 적다
성인 남자 키 평균이 174인가라고 하던데
그 와중에 키 180이상인 근사한 남자친구가 생기는 경우는
(그것도 나는 가만히 있는데 무작정 와서는 '너같은 애는 처음이야' 하며 나를 열렬히 사랑해주는 경우는)
그냥 확률상으로 적다

그렇게 숫자로 '적게' 정해져 있는 게
기도나 노력이나 선행으로 주어지는 상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한다면,

거꾸로,
성적이 안나오거나, 몸이 아프거나, 돈이 없거나, 외모가 마땅치 않을 때는
(확률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기에 해당하게 되는데도)
열심히 하지 않고, 기도하지 않고, 착하게 굴지 않은,
하여튼 뭐가 돼도 자기가 잘못해서 '벌 받은' 게 되어버린다


+


실제로 그런 가치관을 강요하는 세상에서
자기 자신을 쪽팔려하고 비난하고 불행해하는 경우는 너무 흔하다

성적이 아이들을 결정하는(이것은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뜻을 담고 있다. 때로는 말 그대로 성적이 그 아이가 '된다'. 성적이 낮은 아이는 가치가 낮아지고, 성적이 높은 아이는 그냥 가치가 높아진다) 시스템에서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성적이 안나오면 스스로를 탓하는 경우가 많다
- 걔가 초등학교 때 어학원을 보냈어야 하는데, 저희가 맞벌이를 하느라 종합학원에 보내놓고 신경을 안썼어요. 그래서 듣기가 다른 거에 비해 약해요.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애한테 미안하고 답답해요. 이제 어떻게 해야하죠?

모 외국어고등학교에서는 1학년 때 서먹서먹한 아이들 사이에서 공개적으로 부모님 직업을 거수로 답하라고 했었는데,
변호사, 의사, 중소기업 사장, 고위직 공무원 등등 사이에서 단 두명이었던 자영업자(소위 '장사하시는') 부모를 둔 아이들은
그 순간 자기 부모들이 쪽팔렸다
낳아주고 길러주고 사랑해준 부모가.

'남자친구 키가 컸으면 좋겠어' 가 아니라, '키 180도 안되는 남자를 왜 만나?' 하는 분위기에서는
둘만 있을 때는 좋은 애인을
자기 친구들에게는 소개하지 않으려고 한다, 쪽팔려서.
그리고 '겨우 그 정도' 남자를 만나고 있는 자기가 
한심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아이는 그냥 공부를 못하는 것 뿐이다. 엄마도 아이도 잘못된 건 없다
사실 대다수의 부모들은 변호사, 의사, 중소기업 사장, 고위직 공무원이 아니다. 소위 서민이다. 그건 부모의 잘못이 아니다
사랑의 기준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최소한 스스로가 분열되는 그런 기준이라면
그건 애인의 잘못이 아니다. 본인이 가치가 없어서도 아니고.
 

+


나는 잠시 길거리에서 놀았었어
지금은 강사하니까 그나마 이렇게 치마도 입고 깔끔하지만 (BGM: 야유 '우~우~')
그때는 피어싱에 문신에 머리는 지금처럼 땋고서
꽃무늬만 보면 환장해서 분리수거함 같은 데서 주운 꽃무늬들을 이렇게 막 두르고 다녔었다고

어느날 새벽에 나같은 친구들하고 헤롱헤롱 노는데
양복 잘 빼입은 새끼들하고 시비가 붙은 거야
여러분이 나 보면 알겠지만, 내가 성질은 더러워도 먼저 시비를 걸거나 하진 않아
피곤하니까!
별 일도 아닌 걸로 파출소에 갔는데
그래도 경찰, 하면 뭔가 억울하고 그럴 때 제대로 판단을 내려줘야하는 거잖아
그런데, 들어갈 때부터 대우가 다른거야
그 양복놈들한테는 친절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여기 앉아서 이거 쓰세요'고
우리한테는 삿대질을 하면서 '니들은 꼴이 그게 뭐냐.' 이랬어
지나가던 개새끼는 '부모들이 뼈빠지게 고생해서 키워놓으면 저러고 다니고...쯧쯧쯧' 이러는데
그 혀차는 소리가 얼마나 분한지 모를거다
근데 말했잖아, 별일 아니었다고
경찰새끼 한 놈이 실수를 한거지
정도껏하고 입을 다물것이지 지 말에 지가 취한거라, 이랬어
'니들 중에 서울대연고대, 아니지 모모모모 대학(이렇게 한 일고여덟개를 주워 세면서) 거기 다닌 놈들 하나라도 있으면 내가 보내주겠다'
병신
우리 중에 있었거든, 그 대학 중 하나를 다니던 애가.
코 앞에 학생증을 들이밀고는
벙쪄 있을 때 우리를 다 끌고 파출소를 걸어나왔지

(BGM: 탄성 '이야~')

왜, 통괘하냐?

(BGM: 대답 '네~')

통쾌하지
근데 봐라
이거 통쾌한 얘기가 아니야, 졸라 답답한 얘기지
만약 우리 중에 그 대학 다니는 애가 없었으면,
그럼 어땠을까?
억울하게 뒤집어 썼겠지
그럼, 대학이 우리 자신의 성품이나 그 때 있었던 일과 무슨 상관이 있는데?
없지
그러니까 이건 통쾌한 게 아니야
(소위) 좋은 대학, 좋은 집안, 돈, 권력이 없으면 그냥 당할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야

그럼 너네는 통쾌하게 살 기 위해 좋은 대학에 가려고 기를 쓰는 게 빠르겠냐
아니면 확률상 소위 좋다는 대학에 안가더라도 억울하게 무시당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려고 기를 쓰는 게 빠르겠냐

나야 학원 강사지만.


+



나는 그래서,
언뜻 '공평하다'고 주장하는 그놈의 경쟁 사회가 싫다

출발점은 엄청 불공평한 주제에
게다가 그 목표라는 것도 때로는 우스운데,
결국 모두가 확률적으로 낮은 어떤 목표를 향해가야하고,
무엇보다도 확률적으로 높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싸그리, 게다가 스스로 개새끼가 되어버리는 그게 싫다
그냥 있는 자기 자신이 부끄럽고 쪽팔리고 하찮아지는
그게 뭐야


+


...라고 애들한테 말했다
나는 애들한테는 내 고민을 거의 전부 다 얘기하는 편이다

하지만 기말고사기간이기 때문에
진도를 나가야 했고
본문암기를 하나라도 틀리면 죽여버리겠다고 했다

엉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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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효녀 엉엉엉

2011/11/09 12:01 from 공간/서울

우리 성당 보좌신부님은 쫌 웃기시다
미사 때마다 농담을 찐-하게 하시는데,
저번주 일요일 미사 때는 무슨 농담을 하시다가
처음 당신이 사제가 되겠다고 했을 때 어머니가 쉽게 보내주셨을 거 같냐고 하시면서
'그죠? 저라도 저같은 자식은 곁에 두고 싶었을 거에요.'
라고 하셨었다
근데 이랬다:
1. 그 말을 듣고 내가 즉각 이해한 내용- <나같이 걱정되는 자식은 어디 멀리 못 보내고 어머니 당신 곁에 두고 싶을 거다>
2. 사실 보좌 신부님이 말하고자 한 내용- <나처럼 멋진 자식은 나라도 보내기 싫었을 거다>

크면서 자식들은 부모 얘기에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아진다
예를 들어
<너도 커서 너같은 딸 낳아봐라>
라는 말은, 대체로 공감하는 내용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엄마는 내 (지금 생각해보면 장난같은) 결혼을 반대하면서
<네가 커서 너같은 딸 낳을까봐...>
이랬었다..
저 말을 듣고서
저렇게까지 모두 품고가려는 모성애와 희생에 감사드려야 하나,
아니면 결국 내가 저만큼이나 속을 썩였다는 말이니 죄송해해야하나,
그냥 짜증을 부려야 하나,
묘한 기분이 들었었다
젠장! 미안해 죽겠어!



+




엄마가 다시 입원을 하셨다
폐에 종양이 있는데,
우선 암은 아니고 떼어내기 좋은 위치고 뭐 하여튼
어떻게 보면 좋은 상황이다
젠장
하지만 나나 우리 친오빠 말고 다른 누가 <어떻게 보면 좋은 상황이니 힘내> 라고 말하면
죽여버릴테야.

아빠랑 엄마는 수술할 거라는 얘기를 언젠가 화요일에 듣고서도
그 주 목요일까지 나한테 얘기를 안하셨다
뭐 일부러 숨기신 것도 아니고,
그냥 평소에 <아 맞다, 내가 안경을 어따 뒀었지> 하는 식으로
그렇게 이틀을 넘긴 거다
그래도 그렇지, 지금은 따로 사는 것도 아니고 같은 집에 사는데
이틀씩이나!

아빠한테, 그것도 문자로, 엄마가 수술할 거란 얘기를 듣고서 엄마한테 득달같이 전화를 했는데,
그런 나에게 엄마가 통화로 말한 내용 요약:
<사람은 다 혼자다. 아무리 사랑하는 가족이 있어도 결국 혼자 아프고 혼자 견뎌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결국 자기 자신을 잘 간수하는 것이 주위에 도움을 주는 일이다.
 그러니 너도 이런 거 가지고 전화하고 방방거리지 말고,
 지금껏 아무말 안하고 있었지만 네 방 청소 좀 하고, 나갔다 들어오면 손발씻고 이 닦는 버릇을 들이고,
 엄마 없는 동안 집 어지르지 말길 바란다.>

그래서 요즘 집을 어지르지 않고, 씻고 자려고 애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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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나

2011/10/29 15:02 from 공간/서울

나는 중등부 영어를 가르치는 강사다
강사는 선생님과 다르기 때문에 나는 애들앞에서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른 적이 없다
'나' 아니면 '강사'라고 부른다

물리치료를 받으러 갔었는데
내 골반을 풀어주던 선생님이 직업을 물어보시더니,
- 무서운 선생님이시죠?
하고 물어봤다
내가 벼락맞은 것처럼 놀라서
- 어, 어, 어떻게 아셨어요(학부모님인줄 알았음;;)
했더니
내 온 몸이 경직되고 굳어있다고 했다
성질 더러운 사람들이 보통 그렇다고 한다

나는 성적이 나쁜 건 본체만체 하는 편이지만,
숙제를 제대로 안 해온 아이들이 있으면 개처럼 짖는다
그렇게 세 번을 안넘기고, 그 다음에는 가방을 싸게 한다
가방 싼 애를 끌고 교무실에 가서는, 애가 보는 앞에서 보호자에게 전화를 해서
<학습 준비가 안되어 있어서 수업을 할 수가 없으니 돌려보내겠습니다>
라고 말하고 보강 날짜를 통보한다
애들은 옆에서 통화 내용을 들으면서 바짝바짝 굳어간다

옆 반 동료 강사가 
- 이러면 되니 안되니. 잘못했니 안했니
하고 훈계를 할 때,

- 이 개새끼 눈깔아 공부하기 싫으면 학원을 끊고 다닐거면 공부를 해 하고말고는 니네 부모님하고 쇼부를 봐서 결정할 것이지 다 큰 것들이 줏대도 없이 끌려온 것처럼 기어와서는 강사랑 기싸움 하지마 죽여버릴테다 멍멍멍
하면서 짖어댄다
특히 머리 큰 애들이 돈과 강사 비율제의 권력구도를 이미 파악하고서
'데스크에 말할 거에요' 라든가 '이런 거 엄마한테 말해도 돼요?'
(그러니까 데스크를 통해 강사에 대해 컴플레인을 하거나 학원을 그만두면, 강사에게 타격을 준다는 사실을 알고 이용하는 거임)
이러는 아이들에게는, 최소한 <아이>이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모든 어드밴티지조차 절대 주지 않고 물어뜯는다
항상 촛점은
<네가 잘못했다>나 <반성해라>가 아니라
<네가 어떤 놈이든 나는 관심없으니 어설픈 기싸움을 신청해서 가만히 있는 나를 건들면 죽여버리겠다>가 주제다
 그러니까 나한테는 기본적으로 포용하는 선생의 자세란 건 애초에 없다

애들은 나를 <개새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내가 평소에 애들을 개새,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때로는 학교에서 서로 모르는 애들이 학원얘기를 하다가 <개새> 얘기가 나오면서
지들이 같은 학원에 다닌다는 걸 깨달을 때도 있다
그래도 그건 귀엽다. 예전 별명은 <미친개>였다
나는 쇠파이프나 빨래방망이(애들은 엑스칼리버라고 불렀다)로 애들을 팼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제정신일 때는 애들에게 설명하려고 애는 쓴다
애가 우두커니 버려져 있을 때
그 애의 팔을 붙들고 말을 걸지, 랩실로 쫓아버릴 지는 
나한테는 순전히 선택의 문제지만
애들에게는 삶의 문제다
나는 개싸가지같은 놈들이 아니면 대개는, 애들의 팔을 붙잡고 끌고 가서 말을 건다

내 방 벽에는 단어시험 결과와
내 반에서만 보는 독해 복습 시험 결과를 적어두는 표가 있다
처음에는 애들이 자기 점수가 공개적으로 적힌다는 것에 신경을 많이 썼다
같은 이유로 아이들은 발표나 대답하는 것도 꺼린다
나는 수없이 반복적으로, 나는 니들이 맞고 틀리고는 관심이 없고 내가 관심 없는 거에는 니들도 관심 끄라고 말한다
그리고 신경을 써야하는 건 뭘 알고 뭘 모르는 지라고 세뇌시킨다
나는 좋은 선생님의 방향은 최소한 알고 있고
내가 하는 일을 제대로 하는 법도 최소한 알고는 있기 때문이다
애들은 서서히 벽에 붙어있는 시험 결과에 무덤덤해진다
어떤 애들은 60개 단어 시험 커트라인 54개 중에서, 열심히 해와도 30점대 후반을 지속적으로 치는 애들이 있다
표에 써진 결과에 지속적으로 30몇점이 수번 이상 반복되면
난 그 놈의 커트라인을 40개로 줄인다
대신 40개는 넘으라고 강요한다
그게 불공평하다며, 어떤 애들은 지들은 왜 54개를 넘어야 하고 어떤 애는 40개만 넘으면 되냐고 항의한다
나는, 그게 개인의 특성을 고려한 장치이고, 그런 장치가 있을 때 니들은 덕을 보면 봤지 손해를 보지는 않는 범위에 속해 있다고 말해준다
그런 게 손해가 되는 아이들은 상위 영쩜일프로나 그렇다고.
애들은 대개는 이해를 한다

한 소년은 숙제가 듬성듬성이었다
처음에는 대강 해왔다는 생각에 개처럼 짖었지만
두고 보니 그건 걔 성격이었다
그래서 애한테 숙제를 다시 설명하고 당분간 수업 끝나고 남아서 하고 가라고 했고, 소년은 동의했다
어느날 그놈 어머님이 애가 맨날 남고 늦게 온다며 상담전화를 하셨다
애는 벌벌 떨다가 나한테 뭐라고 상담했냐고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나는 그놈 엄마한테,
이놈의 현재 상태는 실력이 아니라 시간의 문제기 때문에, 익숙해질 때까지 시간이 걸리는 일은 시간이 걸려야 하니까 남기는 거라고 말씀드렸었다
어머님은 거듭, <그놈이 숙제를 제대로 안했나요> 하고 물어보셨고
나는 거듭, <제대로 안한 건 아니고 시간 문젭니다> 하고 대답했다
그놈은 그날 내 손을 꼭 잡았었는데,
그 의미를 미처 몰랐던 나는 그 다음 시간에 그 놈의 어떤 점을 개처럼 물어잡고 또 개처럼 짖고 개처럼 팼었다
하지만 그 애는 그렇게 쳐맞고도 그 다음에도 내 손을 꼭 잡았다
시간이 지난 후에 그 의미를 알게 되었을 때, 
난 때로는 애들의 이해심이 어른들 꺼보다 더 큰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애들은 한번 생긴 믿음을 잘 안버린다

+

그러니까 나는 좋은 강사이기도 하고 동시에 나쁜 강사이기도 한 거다
나는 직업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면서도 동시에 개인적인 성향이 강하게 드러나기도 하는 거다
고민은 여러 지점에서 시작된다

얼마전 아무 이유없이 어떤 기운을 감지했다
그러니까, 
아이들은 나를 이해하고 내 행동방식을 이해하지만
여전히, 그리고 당연히 <욕>을 먹거나 내가 <화>를 내는 건 상처가 되는 거다

중3아이들은 학기가 끝났고, 기말고사가 끝나면 이제 고등부로 올라가게 되어있다
수업도 다 끝난 마당에 한 놈이 단독 면담을 하다가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내가 야단 친 거에 비해서 너무 서럽게 울길래 교무실 문을 닫고 말을 해보라고 했다
- 야단 칠 때 욕 좀 하지 마세요
그게 첫마디였다
- 이제 수업도 다 끝난 마당에 그 말을 이제서야 하냐. 알았다 앞으로 1, 2 학년 애들한테는 신경쓸게
유언같던 그 말이 어찌나 가슴을 찌르던지.
또 뭐가 서운했냐고 물어봤더니
하나를 더 털어놨고
거기에 대해 설명을 했더니 아이는 눈물을 삼켰다
또 말해보라고 했더니, 이제 됐다고 했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자랑질을 했다
뭔가 기분이 풀린거다
대신 이제 마음껏 욕을 못하게 된 나는 왠지 뭔가 서먹서먹해져서 애를 먹었다

어쨌든 아이들의 이해심은 상상을 뛰어넘고
동시에 원초적인 화나 욕이 사람에게 주는 상처도 상상을 뛰어넘는 게 확실하다
나는 좋은 강사이기도 하고 나쁜 강사이기도 한데
수 년째 고민을 하고 있지만, 앞으로도 모든 게 여전히 어려울 게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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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beria>      by Echo and the Bunnymen, 2005



Where were we
Fearless and only ever scared of me
Peerless and tearless

That was me
Cold as ice
On my knees
Everynight
Snow white

Where were you
When all the doors were closing

It's you who chose

Not me
Cold as ice
On my knees
Everynight
Snow white

Where were we
When I was fearless and only ever scared of me
Peerless and tearless

Where am I
Still trying to find the light
That burns the northern sky
A rarer borealis

Born to be
Made of lights
On my knees
Everynight
Snow bright

Yeh thats me
Cold as ice
On my knees
Everynight
Snow white

Born to be
Made of lights
On my knees everynight
Snow b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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