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짐이 많다
카메라를 들고 다닐 때는 카메라가 있으니 그렇다치더라도
재밌는 건 카메라를 안들고 다닐때도 짐의 양은 줄지 않는다는 거다
그건 마치 십년 전에 비해 받는 월급은 늘었고 나의 생활은 크게 변한 것 같지 않은데도
항상 돈이 없는 거랑 비슷하다
꿈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 중 하나가 '집'인데,
꿈에서 나오는 내 집은 '집'이라기보단 항상 '통로'다
말 그대로 통로에 있어서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문을 잠글 수 없거나
여럿이서 우물거리며 머무르는 장소거나, 그런 식이다
그것도 아니면 재개발 중이다
것도 대규모로.
꾸준히 머물 수 있는 공간을 원했는데도,
내가 그동안 살던 집은 왠지 '집'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나는 항상 내 집들을 '창고' 정도로만 느꼈다
들고다닐 수 없는 것들을 부득이하게 쌓아두긴했지만, 전혀 안정감이 들지 않았다
대신 당장 필요한 모든 것들을 가방에 쟁이고
그 가방을 들고다녔다
가방은 어느정도 만족스러울 때까지 점점 커지거나 늘어났고
허리랑 무릎은 점점 아팠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결국 가방에 대한 페티쉬가 생기게 되고 만 것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괜찮은 가방을 찾기는 쉽지 않다
괜찮은 가방의 조건
1. 틀이 어느정도 융통성있는 것. 너무 형태가 고정되어 있으면 들어가는 양이 확실히 적어진다
2. 여는 통로가 많은 것. 옆에, 위에, 아래에 별도의 지퍼가 있는 게 편리하다. 크면 클수록 그게 진리다
3. 그물 주머니가 최소 한 개는 있는 것. 물통이나 우산 등, 뭔가 갑갑한 안에 넣어버리면 답답한 것을 막 집어넣을 수 있게
4. 어깨끈의 패드는 필수. 가방은 큰데 어깨패드가 없는 유명브랜드 가방이 얼마나 많은지를 보면 자본주의의 헛점을 볼 수 있다
5. 수납 공간은 충분히. 안그러면 지갑, 담배, 전화기, 메모지, 펜, 휴지 기타등등을 위한 가방이 하나 더 필요하게 된다
6. 예쁜 것. 항상 말하듯이, 미적감각은 역사와 인간에 대한 예의다
결국, 난 가방은 하나만 줄곧 들고다니는 편이라서 가방이 많을 필요가 전혀 없는데도
인터넷을 돌아다니면서 가방 구경하는 취미를 갖게 됐다
옷이나 신발보다도, 가방을 보면서 얻는 만족감이 있다
그리고 새 가방을 살 때마다 항상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 있다
'이건 여행을 갈 때도 겸사겸사 쓸 수 있어'
하지만 그 가방은 여행이 아니라 일상에서 매고 다니게 된다
매일 모든 것이 든 가방을 매고 집에서 나와서
약간은 추가되고 약간은 빠지지만, 어쨌든 비슷한 모든 것이 든 가방을 매고 집으로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