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들의 이야기 후반부 







2005년에
김이진씨(서울 반지하 거주, 20대 초반)의 이야기를 각색한 것이고
영상용으로 만들어졌었다

인터뷰를 4개 장소에서 했었는데
고의인지 아닌지 장소가 바뀔 때 마다 마치 컨셉이 바뀌 듯
이야기의 흐름도 약간씩 변하는 듯 했다

마지막 이야기들은 인터뷰가 끝난 다음에 한 것이다
아마 가장 구체적인 내용일 것 같다




















새벽에 병원 밖에서 내가 산책을 하고 있었을 때,
그는 조명을 들고 전봇대를 타고 있었다.






사람들이 다 자고 있을 때 그의 중국 기행 얘기를 들었던 건, 딱히 잠이 오지 않아서였다.





밥을 먹으러 신촌에서 만났지만 둘 다 돈이 없었고,
밥을 먹을 수 있는 삼전동까지는 걸어가야 했다.





그래서 걷다가 사랑에 빠졌다.
삼백 번을 만나면 삼백 번 다 어김없이, 만남에는 마법적인 요소들이 있는게다.



















우린 돈이 없었지만 길거리엔 버려진 음식들이 많이 있었고, 어떤 것들은 아주 깨끗했다.





당시 서울역엔 작은 개구멍이 있어서, 여행을 가는 데 많은 돈이 들지 않았다.




‘오토바이가 있었으면 좋겠어’라고 그가 말했고,
나는 예전에 오토바이를 태워주던 성질 나쁜 청년을 생각하고 있었다.





포도주를 잔뜩 마시고 겨울 바다에서 수영을 하기도 했다.
그러고나면, 열심히 일을 해서 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도 좀 들었다.




















지루한 파티라고 하더라도 어쨌든 매주 파티는 열렸다. 쥐아이들이 말을 걸면, ‘남자친구가 있어’라고 대답했다. 
‘나는 레즈비언이야’라는
말보다 삼백 배 정도 효과적이다.





섹시함을 위한 그물스타킹 같은 건 전혀 필요하지 않았다.
가슴을 드러내야만 가슴이 있다는 게 증명되는 것도
아니다.







한 지인이 이그러진 얼굴로 말했다. ‘그녀는 사디스트였어’.
노을녁에 수줍게 고백했던 어떤 아가씨는, 알고보
니 에스엠 플레이를 좋아했던 것이다.




















결과는 물론, 여러가지였다.
삼백명의 사람들이 있으면 놀랍게도 경우의 수는 삼백가지가 넘는다.




내게 집을 빌려줬던 한 아가씨는 점점 배가 불러왔다.
낙태를 원하진 않았지만, 꼭 아이를 원했던 것도 아니었다.




애인을 안고서 카메라를 응시할 수 있을 때는, 이미 상황이 끝난 거나 마찬가지다.
마법은 사라졌고, 제정신이
돌아왔다.





음독자살보다 더 용기가 필요한 건, 그의 술에 독을 타는 일이다. 그런 건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오토바이 동호회의 한 연인들은, 마지막 여행을 떠난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오토바이 사고로 죽지 않았다에 백만원을 걸 수도 있다
.







대책 없이 동거에 들어갔던 다른 지인은, 내게 겨울에 추위를 타지 않는 법을 물어왔다.
물론 나는, 추위를 타
지 않고 겨울을 날 수 있는 방법 따윈 전혀 모른다.





내가 아는 많은 연인들은, 길에서 종말을 맞았다.
노숙 같은 건 차라리 로망이 있다. 그들은 함께 거리로 나가
는 대신, 자신들의 추억을 길거리로 내몰곤, 그렇게 산다.




























분명한 것은
이건 김이진씨의 20대 쌩초반이었을 때 자신과 그 주변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십대에 이미 관제, 혼제를 통과하여 학문을 거진 다 익히고 정치와 예술을 논하거나
이미 장작을 삼만 개 정도는 팼을 법한, 또는 밥을 지으러 아궁이를 삼만 번 정도 땠을 법한 조선시대와는
사뭇 다르다

                                                                               (사진들은 인터넷 불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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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GOM GOM LOVER 트랙백 0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