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2011/10/02 22:01 from 공간/서울

2008. 9. 12

주위에서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나는 내 밖으로 세발자욱도 나가지 않아왔다
그것은 나를 중심으로, 웅크리고 비집고 들어가 있어야 하는 좁은 공간처럼 느껴지지만
실은 그게 세상의 전부다

밖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은 간단했다
그들의 방식이 가진 내용은 어려웠지만
그것을 바라보고 판단하는 일은 쉬웠다
왜 천구백몇십몇년에 어떤 나라의 어떤 지역에서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몇 천명, 몇 만명 단위로 죽이는 건지, 어떻게 그럴 수 있는 지를
이해하기는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어려웠지만,
활자로 그 사실을 읽고, 인식하고, 세상의 모든 불합리한, 불가해한 죽음과 광기들을 역사라고 부르는 것은
정말 간단했다

게다가 아..죽음과 광기.
그게 역사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사랑이 있었지
사람들이 사랑이라고 부르는, 그것
그렇게 넓고, 다양하고, 때로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카테고리에 포함된 듯 하면서도
하나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
사랑
...
하지만 난 그 단어를 쓰지 않는다
그 자리에 들어갈 수많은 시간들과 상황들이
너무 개인적인 반경에 머물러 있어서
그렇듯 찜찜한 일반화된 이름을 붙이고 싶지가 않아서다

그 외부세계
죽음과 광기와 사랑으로 가득한 그곳은 내게 현실이 아니다
냄새맡고, 맛보고, 손 댈 수 없는 곳에서 일어나는 지진은
지진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에 지진이 일어난 곳은
내 발 밑이었다



난 억지로라도 나를 외부와 단절시킬 필요성을 느꼈다

전화기를 꺼두었다
한마디 해명이나 설명이면 오히려 영원히 잠잠할 수도 있었을 상황들을,
대책없고 고집스러운 침묵으로 뒤덮어버렸다
그리고 그렇게 내가 던져놓은 돌에서 퍼진 파문조차 두려워서
더욱더 눈과 귀를 막았다
그러면서도 스스로 만든 외로움이 격해져서
무슨 말이든 하고 싶어 미칠 것 같다

지각변동이 일어난 곳은 세 발자욱 안, 내 현실 속이었다

아마도 난 나자신을 더욱 좁을 곳으로 몰아넣거나,
아니면 내 세계 밖으로 밀어내서
조각조각 깊게 갈라져 무너져 내린 그 땅이 속한 곳이 내 현실 속이 아니라,
사람이 다른 사람을 천명씩 만명씩 죽이지만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은
저 외부세계인 것처럼 보이게 만들고 싶은 것 같다

그곳에서는 재판이 일어난다
모년 모월 모일 모시, 한 사람을 죽이고, 그를 아프게 하고,
그 주변에서 애써 만들어진 아슬아슬한 균형을 무너져 내리게 만든 댓가로
변호사가 모이고, 검사가 모이고,
거쳐야 할 절차들이 나오고,
판결이 내려진다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죽음을 이해하는 데 번호가 달린 절차들이 등장하는 것이 조금도 이상하지가 않다
그곳에서는.

북적거리는 사람들, 꼭 잡은 속, 웃음 소리
호기심 어린 그 눈빛들도 전부 다
그곳에서는 자연스럽다

그 자연스러움을 다시 한 번 확인하려고
연휴가 시작되는 금요일인데도 아직 한낮인데도
코엑스 몰에 갔었다
그 많은 얼굴들, 손짓 몸짓으로 흘러다니는 감정의 에너지들,
서로 다른 관심사, 표정, 그들의 소리
거기서 들리는 간접적인 촉감
모든 것들이 너무 이해하기 쉬웠다
내겐 현실이 아닌 풍경이어서
쉽다

아니다
무너진 곳은 내 발밑이었다
내가 얼마나 망설이다가 손을 대고,
다시 한 번 대고,
촉감을 느끼고,
기억하려고 애도 쓰고,
그러다 내 얘기가 되어 내 발밑을 단단하게 지탱하게 되었던 현실이었다
아무리 눈을 막고 귀를 막고
말로 상황을 고정하려고 해봐도
현실과 풍경은 다르다
현실은 풍경이 되지 않는다

내 발밑이
조각조각조각조각 조각이 나서
깊게 갈라져서, 다 부서져 버렸다
나는 무서워서 눈을 막고 귀를 막고 소리를 지르려는데
들어줄 사람이 없어서 도로 삼켜버렸다

아 맞다
외로운 게 아니고 무서웠던 거야

내 입으로 맛보고, 내 손으로 느끼고,
그 냄새가 노랫소리에 섞여 기억으로 남는, 그런 게 현실이라면
현실에서는 한 사람이 죽었는데 번호가 달린 절차를 내밀어서는 안된다
그러면 이상한 거잖아

나는 이 모든 게 어떻게 된건지
언제부터, 어쩌다, 왜 여기까지 왔는지
하나도 모르겠는데, 너무 다 이상한데
그렇게 간단한 절차에 간단한 방식으로...
그렇게 간단한 게 당연해서는 안되는 거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겠으니
좀 더 복잡한 설명을 해 봐.
내가 한 꼬투리 움켜쥐고 버텼던 이 믿음은
이렇게 사라지는 게 당연해서는 안되는 거다

그리고 하나 더 있다
망각이라는 거.
지금이 되자 다시 기억이 난 게 있다
 지금 이거, 전에 겪어본 적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 부들부들 떨리는 외로움과 무서움과
온 촛침소리가 다 들리는 시간의 초조함과
고통을 느끼지 않고서는 멈추지 않는 이 체할 듯한 공허함을
전에 겪은 적이 있다
어떻게, 이런 걸 잊을 수 있었을까
아니 난 어떻게 그동안 이런 느낌을 느꼈다는 것을 잊은 채로
살 수 있었던 걸까

그럼 지금 이것도 잊을 수 있는 건가
그렇겠네

토할 것 같다



나 자신에게 좋은 선물을 줘야겠다
어쩔 수 없다, 라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이유로
현실을 외면하면서
망각을 택하느라, 오랫동안 알 수 없는 막막함에 시달려 온 나 자신에게
말초적인 선물을 주자

현실의 사람들에게서 눈을 돌리고,
이 아픈 시간에 우연히 함께 있는 책임을 뭍고,
내 편안함을 위해 기억과 함께 사라져주길 요구하면서도,
그 엄청난 반복을 반복을 했던 추억에는 손을 내미는,
이 얕은 나 자신에게
만족스러운 선물을 줘야겠다

적절한 용기가 생긴다면
내 현실 안에서 가장 낯선 사람에게 가서
물어볼 것이다



원래는 꽤나 오랫동안 가지고 다니던 질문이었다
<의미가 있을까>
난 의미를 찾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며칠 전에 대학로를 걸어가면서 물어본 것도
같은 질문이었다
<인간이 원래 이렇다면, 예술이 문학이 문화가 무슨 소용이 있어>

난 원점으로 다시 돌아왔다

하지만 내게 적절한 용기가 생기는 날엔
낯선 사람에게 물어볼 것이다
대신 좀 다른 말로.
<난 어떤 사람이에요, 내 얘기를 해주세요>

그가 내 얘기를 해준다면
그 사람이 내 얘기를 할 수 있다면
내가 누군가의 입으로 내 얘기를 들을 수 있게 된다면
이 대책없는 도망을 그만둘 수 있을 것 같다



다 믿을게
번호가 달린 꼬리표가 붙은 게 나의 이야기라고 해도
믿을 수 있어

하지만 지금은 어떻게 해야할 지를 모르겠다
말을 할 수도, 말을 들을 수도 없다
갈까 말까 고민하는 사람은
고민하는 동안에는, 가지 않는 것을 선택한 것과 같다
난 또 반복한다




+


2011. 10. 2

-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이 있다
- 난 기억력이 쉣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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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GOM GOM LOVER 트랙백 0 : 댓글 0